난 어려서부터 남자가 외모에 지나치게 신경쓰는 것을 배제하도록 교육받아왔고 나 역시도 지금 생각하기에 외모에 신경쓸 시간에 무언가 더욱 건설적인것에 시간을 투자하는 것을 선호한다. 이런 나의 사고 방식은 외모지상주의 시대와는 많이 상반되는 점이 있어 한국 사회에서는 다른이들과 조금 탬포가 달라진다. 이런 나에게 머리를 자르는 일은 무척이난 귀찮은 일이다. 하지만 남자인 내 자신이 머리가 긴 것을 싫어한다는 점과는 상반되기도한다. 물론 예쁜 미용실에 앉아 가운을 덮어쓰고 헤어 드레싱을 받는 것 역시 좋아할래야 좋아할 수가 없다. 이미 이발소는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진지 오래고 그나마 남성 전용 미용실마저 이제는 근처에서 발견하기도 쉽지 않다. 

 여러가지를 종합해 본 결과 스포츠로 짧게 잘라 앞머리가 눈을 찌르기 전에 또 다시 스포츠 머리로 짧게 자르면 내 상황에 가장 이상적인 이발법이 된다. 약 3달에서 반년의 시간마다 한 번씩 이발하게 된다. 돈과 시간을 아낄 수 있으며 짧은 스포츠 머리를 선호하는 나에겐 더할 나위 없이 좋은 이발법이다. 하지만 외모 지상주의의 한국사회에서는 무척이나 실용적인 방법임에도 불구하고 역시 불편한점이 생길 수 밖에 없기도 하다. 남자도 2주에서 한달에 한번은 미용실을 다니며 화장마저 하는 시대에 나는 한 명의 괴짜가 된다. 게다가 나이에 비해 흰 머리가 꽤 많은 내가 단 한번도 염색을 안 한다는 것 자체도 남들에게 정말 이상하게 보이나보다. 그냥 못해도 개성정도로 바줄 순 없을까? 누구나 연예인 머리스타일을 따라하고 유행에 민감해야만 할까? 어쨌든 난 불가능하다. 

 

 

 사실 남들이 어찌 보든 내가 그들에게 피해를 주는 것으로 인한 문제가 아니라면 그다지 신경쓰지 않는다. 하지만 나의 이런 머리 관리법은 아이러니하게 나에게 귀찮은 상황을 많이 만들어주곤 한다. 일단 스포츠 머리를 3달~반년간 길러서 미용실을 찾아 스포츠로 시원하게 짤라달라고 하면 미용을 하시는 분들은 10이면 10, 머리를 자르는 이유에 대해 심도있게 설명을 요구한다. 스포츠 머리가 좋다거나, 그냥 자른다는 대답만으로는 질문이 끝나지 않는 것이다. 그나마 질문 끝에 잘라주기라도 하면 다행이지만 그들은 다양한 이유를 붙여 내가 스포츠 머리를 하면 안된다는 주장을 펼치기 시작한다. 그래도 내가 원하는대로 짤라주길 주장해봤자 그들은 가위질은 너무 소심해진다. 결국 '더 짧게요, 더 짧게요.'를 연발하다 지쳐서 귀찮은 마음에 '그냥 알아서 잘라주세요.'라는 발언을 하고 말게 된다. 결국 머리스타일은 누군가 연예인이 했던 머리이거나 유행하는 스타일이된다. 내 대량의 흰머리를 보며 꼭 염색을 하라는 말도 잊지 않는다.- 간혹 절대 염색하지 말라는 이들도 있지만...- 어쨌든 내가 대중성이 떨어진다는 이유로 이발의 자유를 잃은지는 오래다. 비단 머리문제만도 아니다. 대중이나 유행, 인기보다는 내 자신의 취향을 존중하는 나같은 소비자는 한국 사회에서 계속 설자리가 줄어드는 느낌이다. 즉 내 취향의 물건들은 안팔리는 물건이 되버리기에 판매자 측에서는 위험부담만 큰 상품이 되어버리는 것이다. 내가 선호하는 이발 방식도 마찬가지가 아닐까? 물질 만능주의의 피해자가된듯한 해의식이 느껴지는 순간이다.-지나친 생각일 수도 있겠지만....- 

 어쨌든 어제는 우연찮게 늦게까지 운영하는 미용실을 발견해 내 머리를 남자 머리 시원하게 잘라주는 걸 좋아한다며  시원하게 커트해 주시는 여사장님을 만나뵙고 참 다양한 생각을 해 보게되었던 하루였다. 단지 머리 하나 자르면서말이다. 나는 나 지신이 남자로 태어난 것을 사랑하고 내 스스로 남자답게 살아가는 방식을 사랑한다. 물론 지금 하소연 아닌 하소연을 한 것은 어찌보면 내가 생각하는 남자다운 삶을 살아가는 방식과는 위배되는지도 모른다. 좀 더 힘들기 때문에 이 삶을 지켜나가는 것이 더욱 가치있는지도 모르겠다. 앞으로도 남자다운 삶을 살아가기 위해 부단히 노력하며 살아가야겠다.

 

 내 인생의 가장 큰 목적은 바로 행복이다. 물론 이 행복이란 단어가 생각해보면 생각할 수록 복잡하게 다양한 요소가 엉켜있지만 그것을 하나 하나 풀어나가는 재미 또한 행복에 근접하는 하나의 좋은 방법이다. 행복을 이루는 가지 중 가장 뿌리에 근접해있는 것이 바로 마음의 여유다. 마음의 여유라는 뿌리가 없다면 행복이라는 나무는 아무리 풍성한 가지와 잎과 열매를 키워내도 금방 허물어져버리곤 한다. 마음의 여유가 없다면 자신이 일구어낸 행복이라는 결실을 감상할 기회조차 잃게 된다. 대부분 누가 보아도 행복한 상황에 처해있어도 자신의 행복을 눈치재지 못하는 사람들의 대부분은 이 마음의 여유가 없기 때문이다. 마음의 여유는 주위의 상황이나 누군가의 도움으로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다. 여유를 갖기위해 꾸준히 노력한 자만이 누릴 수 있는 권리인 것이다. 아무리 주위 상황이 불행한 상황에서도 자기 자신의 여유라는 뿌리를 튼실히 하기 위해 노력한 사람은 마음이 여유롭다. 

 아무튼 어려서부터 행복에 관해 고뇌해온 나는 현재 그 누구못지 않게 행복에 근접해있다고 느낀다. 물론 마음에 여유가 사라지고 불행을 느낄 때가 없진 않지만 갈수록 회복되는 시기가 빨라지고 있다. 내 인생의 행복을 위해 가장 큰 요소는 하고 싶은 것에 끊임없이 노력하는 것이고 두려움 없이 새로운 것에 도전하는 것이다. 내 인생의 행복의 가지 중 가장 중요한 것들이라고 할 수 있다. 천성적으로 무료함을 싫어하고 짜여진 삶의 틀을 거부하고, 하고 싶은 것을 모두 해보려는 강한 욕망을 가지고 있으며 도전에서 오는 쾌감을 즐긴다. 

 또 한 번 새로운 시도와 도전을 즐기는 중이다. 무언가를 새롭게 시작할 나이는 이미 지났다고 생각하는 이들도 있을 것이고 나 또한 두려움이 없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나는 결국 도전을 선택한다. 금전적 큰 성공도, 성취감도, 아니다. 무엇보다 내 인생의 행복을 위해서이다. 내자신이 죽는 순간 과거를 돌아보며 후회하지 않고 행복하게 눈감기 위해서 말이다. 새로운 시작의 단계를 밟고 있는 이 순간 난 무한한 충족감과 행복감을 느낀다. 

 



 원래는 화창하고 온화한 봄날을 맞이해 맑고 푸른 하늘이 우리를 반겨야 정상이겠지만 하늘은 미세한 대기 오염 물질로 잔뜩 뒤덮혀 뿌옇기만 하다. 하늘을 뒤덮고 있는 이 미세 먼지는 중국 대륙에서부터 흘러들어온 것으로 추정되고 있으며 인간이 만들어낸 다양한 유독성 오염물질이 가득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산업혁명 시기 환경을 생각지 않은 인간의 지나친 생산 활동이 만들어낸 영국의 스모그와 큰 차이가 없다고 볼 수 있을 것이다. 당시 영국 상공을 뒤엎었던 이 유독성 스모그는 놀라울 정도로 많은 인명피해를 불러왔었다. 현재 경재성장에만 신경쓴 나머지 환경을 생각지 않은 중국은 당시 영국에 못지 않은 스모그로 큰 몸살을 앓고 있다.


 이 피해가 한국에까지 영향을 주고 있는 것이다. 아직 일본의 방사능 누출 사고 역시 오랜 시간이 지나도록 사고 처리가 완료되지 않아 자연계에는 존재하지 않는 방사능 물질의 유출이 지속적으로 일어나고 있다. 이 유독성 물질들 역시 항상 지구 전체를 순환하고 있는 대기와 바다를 통해 우리에게 알게 모르게 영향을 주고 있을 것이다. 그렇다고 우리 나라가 피해 대상이기만 한 것은 아니다. 자랑스럽게 한국어가 쓰여있는 한국산 쓰레기가 바다를 따라 일본이나 중국, 멀리 미국 해안까지도 흘러가는 양이 무시무시하다는 소식을 접한 적도 있으며 이 작은 나라에서 만들ㅓ내는 오염 물질의 양은 실로 방대하다. 어찌 보면 이미 인간의 손에 의해 일어난 환경 오염 수준의 심각성은 국가적인 차원을 넘어선 범 세계적인 문제라고 할 수 있다. 이미 인류 전체가 함께 떠 안아 해결해야할 범인류적 문제인 것이다.



 더욱 무서운 점은 인류가 조금씩 자기 자신들이 만들어 놓은 죄업의 결과물인 환경 오염에 조금씩 익숙해져만 가고 있다는 점이다. 표면적으로는 때론 환경 오염에 크게 신경을 쓰고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아직도 지속적으로 환경 오염의 심각성은 더욱 증대되어가고만 있다. 환경 규제를 강화해보아도 눈에 잘 띄지 않는 음지에서 공장 굴뚝의 유독한 연기는 계속해서 하늘로 뿜어져 올라가고 있으며 관리 안된 자동차의 배기 장치가 뿜어내는 매연은 하늘을 검게 물들이고 있다. 무심결에 한 명 한 명의 사람 손을 떠난 쓰레기들은 모여서 쓰레기의 산을 이루고 있다. 바로 눈 앞에 결과로 보여지지 않는 환경 오염의 폐혜보다는 눈 앞의 이익을 우선하는 물질만능주의에 젖어 살고 있는 이들이 적지 않다. 당장 나 하나가 일으킬 문제가 얼마나 크겠느냐는 자기 합리화는 좋지 않은 행위를 습관화 시키곤 한다. 



 사실 이전에는 이런 환경 오염이 만들어내는 심각한 문제들이 현실감 있게 다가온 적은 그리 많지 않다. 그래도 몇몇 선구자들과 환경운동가, 앞을 내다본 작가들의 창작물들을 통해 막연한 공포감과 경계의식을 가져본 경험은 있다. 대학생 시절, 환경운동과 인권운동에 열정을 가지고 있었던 인류학 교수님의 미래를 내다본 경고, 암울한 인류의 앞날을 예견한 다양한 SF 창작물들, 지금 햇빛을 가리고 있는 뿌연 스모그를 보고 있자면 이 선구자들의 현명하고 냉철한 판단력에 감탄을 금치 못하면서도 마음속으로 슬픈 생각을 지울 수 가 없다. 이런 암울한 현실은 이미 우리 곁으로 바짝 다가와있는 것이다. 위 이미지의 바람계곡의 나우시카는 인류가 심각한 수준으로 오염시킨 지구가 자정 작용을 거치면서 나오는 인체에 치명적인 독소로 인해 마스크를 사용하지 않으면 생존할 수 없는 인류의 모습을 그리고 있다. 최근 스모그로 인해 독특한 형태의 마스크를 쓰고 돌아다니는 이들을 근처에서 쉽게 목격할 수 있다. 그럴때면 이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의 바람계곡의 나우시카가 연상되곤 한다. 지금도 약한 호흡기를 가지고 있는 이들에게는 극심한 피혜를 주는 수준의 공기 오염 수준을 가끔 보여주고 있다. 공기 오염 수준이 건강한 성인의 자연 치유력의 수준을 넘어설 날도 멀지 않았다고 생각된다. 



 근처를 둘러보면 어린 아이들이나 갓난 아기들이 호흡기 질환을 안고 있거나 아토피 피부로 고생하는 상황을 자주 보게 된다. 이미 심각한 수준에 이른 인간이 만들어낸 환경오염의 영향이 절대 아니라고 누가 말할 수 있겠는가? 이 불쌍한 꼬마들을 보고있자면 인류의 죄업을 좀 더 피부 가까이 느끼게 된다. 현재를 살아가는 이들중에 난 이런 문제에 대해 아무런 죄도 없어라고 자신있게 말하는 이들도 있겠지만 사실 좀 더 책임감 있게 들여다보면 환경 오염에 일조한 죄업에서 완전히 깨끗한 이들은 아무도 없을 것이다. 누구나 자동차를 이용하고 전기나 가스를 사용하며 대량생산된 공산품을 소모하고있다면 말이다. 어쩌면 우리는 우리 다음 세대에게 푸른 하늘과 깨끗한 물, 공기, 토양을 물려줄 수 없을지도 모른다. 다음 세대라고 거창하게 표현할 것도 없이 우리의 자식들이 장성해서 살아갈 환경은 아마도 다양한 SF 창작물에 등장했던 바로 그 끔찍한 모습일지도 모른다. 지금도 이런 비극을 막기 위해 자기 자신을 희생해가며 노력을 아끼지 않는 환경운동가들도 있으며 이런 이들이 있기에 그나마 아직은 푸른 하늘을 볼 수 있는 것이겠지만 이들만의 노력만으론 결국 역부족일 것이다. 우리 자식들에게 살만한 환경을 물려주기 위해서는 지금 당장이라도 나 하나하나의 노력이 모여서 범인류적인, 전세계적인 규모가 되어야만 할 것이다. 나스스로도 나 하나가 할 수 있는 만큼의 노력은 꼭 해야겠다는 다짐을 다시 한 번 해 본다. 무엇보다 가장 중요한 일보는 바로 환경 문제에 대한 관심이다. 하지만 역시 미래의 환경 오염 문제 개선에 대한 전망에 대해서는 부정적인 느낌이 드는 것은 왜일까? 원래는 푸르고 맑고 아름다웠어야할 뿌연 초 봄 하늘을 바라보며 든 슬픈 생각을 그냥 손가락 가는대로 적어 보았다. 




 오늘은 미국을 대표하는, 내가 좋아하는 개성적인 두 기업을 소재로 이야기 해 보려고 한다. 하나는 미국 IT 산업의 심볼이라고 할 수 있는 애플(Apple), 그리고 또 하나는 이륜자동차(二輪自動車, 오토바이, 모터싸이클, Motorcycle) 제조사로서 지금은 강력한 미국을 대표하는 하나의 아이콘으로 자리잡은 할리데이비슨(Harley-Davidson)이라는 기업이다. 두 기업은 얼핏 역사 깊고 성공한, 미국에서 시작된 글로벌 기업이라는 것 이외에는 별로 공통점이 없어보인다. 


<애플의 창업자 스티브 잡스와 스티브 워즈니악>


 하지만 관심을 가지고 조금 더 깊이 들여다 보면 놀랍게도 두 기업은 의외의 많은 공통점을 가지고 있다. 첫 번째로 두 기업 모두 두 명의 동업자가 만들어낸 기업이라는 것이다. 그리고 이 각각 두 명의 창업자들은 자신의 사업에 있어 단지 돈벌이 수단 이상으로 자신의 사업 분야에서 열정과 애정을 가지고 있었다는 점이다. 애플의 경우 쉽게 창업자로 거론되는 스티브 잡스(Steven Paul Jobs, 애칭 : Steve, 이하 '잡스', 1955~2011), 워즈니악(Stephen Wozniak, 별명 : 마법사 워즈, 애칭 : Woz, 이하 '워즈', 1950~), 이 둘과 잘 알려지지 않은 한 명의 창업자가 있다. 하지만 창업자라고는 해도 뒤 늦게 참여했으며 이들과 사업을 함께한 기간도 길지 않으니 잡스와 워즈를 창업자로 보아도 무방할 것 같다. 


<할리데이비슨의 창업자 윌리엄 할리와 아서 데이비슨>


 할리데이비슨은 자전거 회사를 다니던 윌리엄 S 할리(William S. Harley, 이하 '할리', 1880~1943)와 철강회사에 근무하던 아서 데이비슨(Athur Davidson, 이하 '데이비슨', 1881~1950)이 의기 투압해 만든 이륜자동차 제조사로 각각의 성을 합쳐 할리데이비슨이라는 회사명을 만들었다. 데이비슨보다 한 살 많고 엔지니어에 가까운 존재였던 할리의 이름을 앞에 두었다고도 한다. 


<워즈와 잡스는 동업자이면서 같은 분야에 열정을 가졌던 친구이기도 했다. 어쩌면 서로 이해 할 수 있는 단 한 명의 동등한 존재가 이들의 성공의 중요한 요소중 하나가 아니었을까?>


 두 회사의 각 두명의 창업자는 나이 차이가 별로 나지 않는 친구였으며 모두 20대라는 젊은 나이에 창업을 했다. 그 시작 또한 소박하기 그지 없었다는 점도 유사하다. 애플은 두 공학도 잡스와 워즈에 의해 잡스집 주차고에서 애플1이 탄생하면서 시작되었고, 할리데이비슨 역시 갖 20대가 된 두 청년 할리와 데이비슨에 의해 판자로 만들어진 창고에서 좀 더 편한 자전거를 추구하다가 엔진이 달린 자전거를 구상해 내면서 시작되었다. 지금의 미국을 대표하는 두 글로벌 기업의 규모를 생각하면 상상하기도 쉽지 않은 소박한 시작이었다. 각각 의기 투합된 두 친구들이 얼마나 많은 재능과 열정, 그리고 애정을 가지고 작지만 무한한 가능성을 가진 원대한 시작의 첫 발을 디뎠을 지 상상해 볼 수 있는 대목이다. 수수했지만 어떤 금전수치로도 비교할 수 없는 귀한 것을 가지고 있었던 것이다. 


<지금은 고인이 되어버린 잡스, 자신의 분야에 대한 열정과 깊이있는 고찰의 결과는 애플의 제품으로 나타났다.>


 또 하나 공통점을 찾는다면 두 회사 모두 강력한 자신만의 전통과 개성을 긴 역사 동안 유지 발전시켜왔다는 것이다. 할리데이비슨의 100년이 넘는 역사에는 비할 바가 아니지만 IT회사로서는 이래적인 긴 역사를 가진 회사가 바로 애플이다. 1976년 설립되어 2013년인 지금 37년의 세월을 외골수로 유지해 온 것이 바로 애플이다. 특히나 변화나 발전에 유독 민감한 IT회사가 이 처럼 오랜시간을 유지해왔다는 것은 정말 흔치 않은 일이라고 할 수 있다. 애플은 1976년에 설립되어 37년의 세월을, 할리데이비슨은 1903년에 설립되어 110년의 세월을(2013년 기준), 물론, 각 업계에서 가장 오래된 회사는 아닐지라도 실로 기나긴 시간동안 사업을 유지해 오면서도 그들 만이 가지고 있는 개성과 전통을 절대 잃지 않고 현재까지도 존재하고 있다. 애플은 미니멀리즘에 입각해 최대한 단순하면서도 고급스러움을 잃지 않으며 질리지 않는 하드웨어, 소프트웨어 디자인 안에 최대한 쓰기 편리하면서도 재미있는 이용성을 가진 제품을 만드는 전통성과 개성을 가지고 있다. 이에 더불어 말료 표현하기 쉽지 않은 애플만의 개성이 항상 녹아들어가 있다. 애플 제품에 조금이라도 관심을 가지고 있었던 사람이라면 언제 어디서나 애플 사의 사과로고를 보기 전에도 애플 제품임을 짐작할 수 있다.

  

<잡스를 괴짜에 외골수로 치부한 이들도 많지만, 단지 그의 열정이 고집스러움으로 비추어진 것은 아니었을까?>

 

 할리데이비슨 역시 자사 제품에 110년 기간동안 이어온 전통과 개성이 사라지지 않고 숨쉬고 있다. 다른 어떤 성공한 이륜자동차 회사도 흉내내지 못하고 흉내낼 엄두조차 낼 수 없는 것이 바로 할리데이비슨 이륜자동차만의 독창성이자 전통이다. 할리데이비슨만의 감성적인 엔진 느낌과 넉넉한 주행성은 110년의 역사만큼이나 굳건하기만 하다. 기업이란 것이 이익 창출을 큰 목적으로 하는 이상 유행과 변화에 민감할 수 밖에 없는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이 두 회사는 이에 앞서 변화 되어가는 시류에 휩쓸리기 보다는 스스로 가치있는 전통과 창조적인 개성으로 새로운 유행을 창조하고 새로운 문화를 이끌었다. 그만큼 눈 앞의 이익에만 눈이 멀어 자사 제품과 문화에 대한 깊이 있는 해석과 고찰을 무시하고 유행과 변화에만 이끌리는 가벼운 기업정신과는 근본적으로 큰 차이를 가지고 있는 것이다. 이 점이 할리데이비슨과 애플인 긴 역사동안 성공을 유지한 가장 큰 이유(필자의 개인적인 견해) 두 가지 중 첫번째라고 할 수 있겠다. 


<애플의 인기 제품 애플2, 1977년 발표>


 다른 공통점은 두 회사 제품 모두 제조사의 자신의 창조물에 대한 깊은 애정과 열정, 노력을 느낄 수있다는 점이다. 이는 어쩌면 기업활동에 가장 중요한 요소이면서도 쉽게 간과되는 점이라고도 할 수 있다. 제조사 입장에서 단순히 이윤 창출을 위한 제품이 아닌 소비자 입장에서 쓰고 싶고 가지고 싶은 제품, 그러기 위해 지갑을 열어 소중한 자신의 재산을 지불하고도 충분한 만족감을 얻을 수 있는 제품을 내 놓는 곳이 바로 할리데이비슨과 애플이다. 제조사 측이 스스로 느끼기에도 애착이 가고 애정이 가는 제품은 소비자 역시 충분히 그 매력을 느끼기 마련이다. 물론 소비자의 취향은 천차만별이다. 하지만 제조사가 단순히 상술로 치장한 허울 뿐인 제품을 소비자로서 속아 쓸 수는 있겠지만 그 제품을 사랑하는 일은 거의 없을 것이라는 점은 어느정도 누구나 자신있게 말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닐까?


<KBS 백년의 기업 할리데이비슨 편에 등장했던 할리데이비슨의 현 사장, 그의 맨트에서 할리데이비슨 직원들이 얼마나 회사와 자사의 제품, 그리고 그들의 일과 소비자들을 사랑하는지 짐작할 수 있었다.>


 대체로 대다수의 기업은 자사 제품의 질을 향상시키기에 앞서 눈 앞의 이익에 눈이 멀어 언론등을 이용한 마케팅으로 자사 제품의 약점을 감추기에 급급한다. 이쪽이 더 싸게 먹히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열정과 애정은 돈으로 살 수 없는 가치이기때문이다. 국내의 소위 성공한 대기업들도 애정과 열정보단 얕은 상술에 더 많은 노력을 쏟고 있는 점을 보면 참으로 아쉽기만 하다. 이런 깊이 없는 상술이 팽배하는 곳에 진정한 창조란 존재할 수 없을 것이다. 애플과 할리데이비슨의 자사 제품에 대한, 그리고 자신들의 분야에 대한 사랑은 실로 돈으로 환산이 되지 않는 가치를 가지고 있는 것이다. 이 부분이 바로 애플과 할리데이비슨의 역사 깊은 성공의 두번째 원동력이었을 것이다. 천재는 노력가를 이길 수 없다. 노력가는 열정을 가지고 즐기는 이들을 이길 수 없다. 이 두 회사에 대해 조금이라도 깊이있는 관심을 가져본 이들이라면, 애플과 할리데이비슨을 개인으로 본다면, 천재라는 점에서는 의문을 가질 이들도 있겠지만 노력가이며 열정을 가지고 즐기는 이들이라는 점에서는 대부분 동의를 할 것이라고 생각한다. 

 



<내가 할리데이비슨과 인연을 가지게 해 준 스포스터 XL883R 로드스터, 현재 판매중인 할리데이비슨 모델 중에서는 가장 작은 배기량의 엔진을 가지고 있으며 스포티한 주행을 중점으로한 스포스터 제품군중 가장 스포티함이 살아있는 할리데이비슨이라고 할 수 있다. 한국에서는 대배기량의 할리데이비슨만을 선호하는 성향이 있지만 가장 할리데이비슨 다움을 잃지 않고있는 모델은 바로 스포스터와 다이나 그룹이라고 생각한다. 대체로 일본 유럽 등의 선진국일수록 스포스터 제품들이 더욱 많이 팔린다는 특성도 주목할만 하다. 특히 883R은 할리데이비슨의 레이싱 전통이 고스란히 살아있는 모델이기도 하다. 현재 미국내에서는 단종 상태이지만 유럽, 일본 등지에서는 그 인기에 힘입어 계속적으로 판매되고 있어 10년 가까운 롱런을 유지하고 있다. 한국에서 역시 아직 판매 중이며 2014년 카달로그에도 올라있다. 그도 그럴 것이 할리데이비슨 모델중에서도 유독, 밸런스와 매력 면에서 실로 훌륭한 완성도를 보이는 이륜자동차이기 때문이다.>


 두 회사 모두 소비자들에게 깊은 애정을 받고 있다는 공통점이 있다. 이는 '소비자'라고 표기하기에 앞서 '팬'이라고 표현해도 무방할 정도라고 할 수 있다. 나 역시 이런 팬 중 하나다. 애플의 제품은 아이팟, 아이폰, 매킨토시, 몇몇 악세서리 제품에 이르기 까지 깊은 만족감과 함께 무척 애용하고 있으며 할리데이비슨의 경우 스포스터 제품군의 883R을 타게 되면서 인연을 맺어 지금은 정말 사랑해 마지 않게 된 이륜자동차 회사가 되었다. 몇몇은 이를 두고 소비자의 제조사에 대한 '충성도'가 높다는 표현을 쓴곤 하지만 개인적으로 이런 표현을 좋아하진 않는다. 단지 가치 있고 인정할 만한 개성을 존중하고 좋아하는 것이라고나 할까? '충성도'라 함은 맹목성이 내제된 표현이지만 어쩌면 내가 애플과 할리데이비슨을 좋아하는데는 이성적 요인이 깊이 작용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할리데이비슨 전통의 공랭식 2기통 엔진, 할리데이비슨만의 깊이 있는 감성이 살아있는 엔진은 타사가 쉽게 흉내낼 수 없는 부분이다. 캬브레터에서 익젝션으로 공랭식에서 최근 수냉식에 공수냉식 엔진 개발까지 이루고 있지만 전통적인 할리데이비슨 엔진 특유의 감성을 잃지 않고 있다.>


 때문에 '충성심'이라기 보단 '존경심'이라는 표현이 더 어울릴 것 같다. 더 나아가 '애플빠'등의 깎아내리는 것이 목적인 저속한 표현은 말할 가치도 없지만 말이다. 하지만 이런 표현 역시 애플과 할리데이비슨에 대한 소비자들의 애정을 반증하는 결과이기도 하다. 한 번 애플 제품의 매력에 빠져들면 다른 유사 제품은 더이상 눈에 들어오지 않는 경험을 한 이들은 애플 제품에 깊은 애정을 가지게 된다. 이런 이들이 적지 않다는 점도 유의해 볼 만 하다. 할리데이비슨에 대한 소비자들의 사랑은 더욱 말할 나위가 없다. 호그(H.O.G Harley-Davidson Owners Group의 약자)라는 전대미문의 초대형 소비자 그룹만을 보아도 극명해 진다. 1983에 창설된 이 모임은 한때 세계 경제 위기 속에 경영난을 겪은 할리데이비슨을 구재한 큰 원동력이기도 했으니 이들의 할리데이비슨에 대한 사랑은 달리 표현할 필요가 없을 것 같다. 나 역시 지금 국제 호그 회원이다. 여태까지 타오던 어떤 첨단의 이륜자동차보다도 타는 행복을 선사하는 할리데이비슨의 제품! 할리데이비슨 스포스터 883R를 3년 째 타고있는 나로서도 왠만한 탈 재미를 재공하는 이륜자동차가 아니면 쉽게 눈이 들어오지 않는다. 


  

<애플사의 로고 배어물은 사과 마크, 이 로고 탄생 비화와 의미는 여러가지로 화자되고 있지만 100% 확신할 만한 것은 아직 존재하지 않는다. 어쨌든 생각보다 큰 의미도 없고 엉뚱한 발상에서 탄생되었다는 점에선 어떤 비화도 공통점을 가지고 있다.>


 할리데이비슨과 애플의 마켓팅 특성에서는 비슷한 점을 살펴볼 수 있다. 이 두 회사의 마케팅 방식은 자극성이나 연예인등의 유명인사에 의존하는 대부분의 이익 추구집단의 광고 방식과는 큰 차이를 보인다. 이 독특성의 성공에 대해서 마케팅 업계는 가장 중요한 연구 소재로서 이 두 회사를 꼽곤한다. 과거 내가 대학생 시절 교양 과목으로 들어던 마켓팅 관련 과목의 강의에서 역시 마찬가지였다. 앞 서 말했듯 자극성과 선정성에 기대는 여타 기업의 마켓팅에 비해 이 두 회사의 그것은 무척이나 수수한 방식을 채택한다. 그러면서도 가장 그들이 중점화 시키는 것은 자사 제품의 특성에 대한 짧고 확실한 어필이다. 자사 제품에 대한 깊은 애정과 자신감이 아니면 불가능한 마케팅 방식이다. 대부분 이익 추구 집단의 경우 자사 제품의 단점을 보완하기 위해 자극성을 높이던가 과대 포장된 광고를 사용하기 마련이지만 이 두 회사의 마켓팅은 훌륭한 매력을 가진 자사 제품의 장점을 설명하기 가장 효과적인 방법을 채택한다. 자연히 마켓팅은 수수하고 소박하면서도 단순미가 살아있는 간단명료성을 띄게 되는 것이다. 더 나아가 이들 두 회사의 제품 자체가 바로 스스로 마켓팅 능력을 가질 정도의 매력을 보유하게 만들어져있고 그 매력을 적나라하게 보여주기만 하면 되는 것이다. 이들 마켓팅에 추가된 조미료라고는 번뜩이는 표현력에 대한 아이디어와 재치라고나 할까? 어찌 보면 마케팅의 교과서 적인 면만을 확실하게 가지고 있다는 점이 특징이라면 특징이라고 할 수있겠다. 이점을 유념해 본다면 여타 이익 집단이 얼마나 마켓팅에서 꼼수아닌 꼼수만을 고집하고 있는지 확연히 보이는 대목이라고도 할 수 있겠다.



<호그는 할리데이비슨 소비자 그룹을 넘어서 또 하나의 할리데이비슨 수유주라고 표현할 수 있다. 지금의 할리데이비슨이 있기까지 그들의 할리데이비슨 이륜자동차에 대한 사랑은 큰 역할을 했다. 뿐만아니라 할리데이비슨을 하나의 문화로서 강력한 미국을 상징하는 하나의 아이콘으로서 자리매김하게 했다. 자가 제품에 강력한 매력을 부여했다면 어쩌면 마케팅이 자리할 역할은 최대한 줄어들지도 모른다. 이미 소비자들에게 충분히 인정받은 제품이기 때문이다.>


 두 회사 모두 도산 위기를 넘어서 현재에 이르렀다는 점 역시 공통점이다. 한 때 애플의 창업주였던 잡스는 경영분쟁에서 밀려나 이사진에 의해 그가 설립한 회사 애플로 부터 쫓겨나는 수모를 겪게 된다. 하지만 경영난을 해소하지 못한 애플에 의해 11년 만에 다시 애플의 CEO로서 복귀하고 아이팟, 아이폰 등의 큰 성공에 힘입어 지금의 애플의 위치까지 이끈다. 애플은 그만큼 수장인 잡스의 천재성을 빼 놓고 볼 수 없는 기업이기도 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직까지도 좋은 성과를 보이고 있는 애플이지만 세상을 떠난지 약 2년, 아직도 고인이 된 잡스의 영향력은 여전히 남아있다는 느낌이다. 지금 잡스가 부재한 애플이 그의 빈 자리를 얼마나 잘 매꾸고 그 동안 애플이 쌓아온 것들을 잘 지켜나가고 발전시켜나갈지는 정말 흥미로운 관심거리라고 할 수 있다.


<애플사 제품의 디자인 철학은 애플사 제품에 강력한 매력과 개성을 부여하게 되었다. 트랜드를 쫓기에 앞서 트랜드를 창출해 낼 수 있는 에너지를 가지고 있는 것이다.>


 할리데이비슨 역시 1960년대 싸고 성능 좋은 일본산 이륜자동차 회사들을 상대로 경쟁력을 적지않게 상실해 큰 경영난을 이겨내지 못하고 결국 AMF라는 아웃도어 회사에 합병되는 수모를 겪게 된다. 하지만 할리데이비슨만의 전통성과 개성을 사랑하는 13명의 임원진에 의해 다시금 불리 독립하게 되고 1983년 창립된 호그의 견인차 역할에 힘입어 2000년 다시금 여타 이륜자동차 제조사를 재치고 세계 판매 1위의 자리를 되찾고 지금의 성공한 할리데이비슨의 위치에 서게 된다. 재미있는 것은 할리데이비슨을 설립한 할리와 데이비슨의 자손들도 회사 경영에 적극 참여했다는 점이다. 애플이나 할리데이비슨이 기사회생이 가능했던 이유를 들여다 보면 창립자 또는 경영자의 금전적 이해득실을 넘어선 자사와 자사 제품에 대한 애착과 열정, 그로인한 적지 않은 모험이 감행해 성공에 이르렀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리고 이런 위기 상황에서 조차 여전히 이 회사 제품들의 개성과 전통을 사랑했던 소비자들이 있었다는 점이 크게 주목할 만한 점이다.


<독특하고 기발한 발상은 남들에게 쉽게 인정받을 수 없다. 쉽게 인정 받았다면 이미 독특하고 기발한 발상이 아닌 평범함이었을 것이다. 독특하고 기발한 발상은 그 자체만으로도 큰 가치를 가지지만 그 가치가 자리매김 하기까지는 적지 않은 시간이 걸리기 나름이다.>


<지금은 전설이 되어버린 1984년 매킨토시의 탄생을 알리는 인상적인 광고, 참고로 매킨토시(Macintosh)는 사과의 한 종류를 일컷는 단어다.>


<할리데이비슨도 애플도 평범한 것에 안주하길 바라지 않는다.>


<인상 깊었던 할리데이비슨 광고, 자동차, 걷는 이들 모두 쇠창살 속에 갇혀서 자유를 속박받고 있지만 할리데이비슨을 타고 있는 이는 자유를 만끽하고 있다.>


<인상 깊었던 할리데이비슨 광고>


<애플의 광고에는 유명한 연예인이나 성정성 따위는 등장하지 않는다. 애플은 광고라는 것을 편안한 분위기 속에서 자사 제품의 특징을 최대한 효과적으로 알릴 매체로서 활용할 뿐이다.>


<할리데이비슨은 의외로 레이싱을 통한 광고 활동에도 적지 않은 노력을 아끼지 않는다. 사진은 NHRA의 드레그 레이싱, 400m 직선 거리를 누가 더 빨리 주파하는지를 겨루는 레이싱이다.>

 

<할리데이비슨의 시작은 자전거와 내연기관 엔진의 조합이라는 발상에서 탄생되었다.>


<할리데이비슨의 스포스터 모델은 원메이커 원모델 레이싱에 사용되기도 한다.>


<강력한 남성미를 상징하는 할리데이비슨인 만큼 격투기 종목의 스폰서로서 활약하며 자사 마케팅 일환으로 활용하기도 한다. 사진은 미국 UFC 경기 장면, 링 바닦에서 할리데이비슨의 로고를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이 밖에도 할리데이비슨과 애플의 공통점은 생각 외로 많이 존재한다. IT회사와 이륜자동차 제조사라는 절대 어울리지 않는 두 분야에서 큰 성공을 거두고 있는 두 회사이지만 위에 언급한 공통점 만으로도 실로 많은 점에서 유사점을 보이고 있는 것이다. 이는 어떤 분야에서건 성공에 필요한 공통 분모적 요소가 존재한다는 반증일 지도 모르겠다. 간단하고도 누구나 알고 있는 요소이지만 쉽게 실천되지 않는 요소들을 두 회사 모두 가지고 있다. 이것이 바로 두 회가의 깊은 역사에 뿌리를 튼튼히 내린 전통성과 개성의 원동력이라고 할 수 있다. 마지막으로 이 글은 완성본이 아니다. 앞으로 시간이 나는데로 업데이트를 할 기약없는 예정을 가진 글이다.



<우리 집 2층에서 바라본 경치, 늦 가을 벼들이 금색으로 물들어 가고 있다.>


 원래는 없었지만 언제부터 툭 튀어나와 일년에 한 번씩은 내 귀를 한 번씩 자극하곤 하는 '빼빼로데이', 1983년 롯X 제과에서 발매한 과자 빼빼로가 인기를 얻으며 생겨난 날이라고 한다. 당시 어떤 지역 여학생들이 11월 11일 11분 11초에 빼빼로를 먹으면 빼빼로 처럼 마른 몸이 될 수 있다는 장난스런 발상을 한 대서 유래되어 지금은 각 제과사의 상술에 아낌없이 사용되고있는 조금 볼썽 사나운 날이기도 하다. 물론 마음을 담아 친한 이들에게 빼빼로를 선물하는 귀여운 개인들을 욕할 마음은 없다. 나도 받으보면 기분이 나쁘진 않더라. 하지만 오늘 알게된 사실 하나, 11월 11일 오늘은 '농업인의 날'이기도 하다는 것이다. 

 

농업인의 날은 대한민국의 공식 기념일이다. 기념일은 11월 11일이다.

농업인의 날이 11월 11일인 이유는 한자 11(十一)을 합치면 흙 토(土)가 되기 때문이다.

원래 농업인의 날은 원홍기 전 축협 대표 등의 주도로 1964년부터 개최되었다. 원 대표가 살던 강원도 원주시 지역을 중심으로 벌어지던 행사는 1996년에 이르러 정부 지정 공식 기념일이 되었다.

2003년부터 안랩은 11월 11일을 초등학생이 좋아하는 빼빼로 데이 대신 가래떡을 먹는 가래떡 데이로 지정하여 사내 행사를 시행하고 있다. 이후 이것이 확산되어 농림부에서도 가래떡 데이를 농업인의 날 행사의 일환으로 진행하고 있다.


 위는 농업인의 날에 관한 위키백과의 내용을 발췌한 것이다. 숫자 '11'을 의미하는 한자 '十一' 두 글자를 합하면 한자 (土)흙토가 된다는 좋은 의미에서 시작된 이날이 어쩌다 보니 운이없게도(?) 빼빼로데이와 겹쳐버린 것이다. 이 때문인지 1996년 정부 공식 지정된, 생각보다 오래된 기념일임에도 불구하고 나같은 경우 이 사실을 오늘 처음으로 알게된 것이다. 


<농민들은 1년 농사의 금빛 결실들을 바라보며 어떤 생각을 할까?>


 물론 지금까지 나는 농산물을 소비하는 것 이외에는 별로 경험해 본 바가 없다. 국민학생 시절 함께 살던 외할머니가 동네 공터에서 텃밭 일구는 것을 설렁설렁 도와드리던 기억이 대부분이라고나 할까? 최근에는 전원생활을 시작하면서 근처에 넓은 농토들을 많이 보게 되지만 정작 나에겐 우리 앞마당의 작은 텃밭이 전부이다. 하지만 이런 공간에 속하게 되니 더 많은 생각이 들곤한다. 농업은 인간 생존의 근간을 이루는 상당히 원초적인 근본적 생활 수단이다. 인간 사회에서 농업이 시작된 역사는 실로 까마득히도 먼 역사의 저 건너편이지만 그 중요성은 현대사회에 와서도 조금도 줄었다고 할 수 없을 것이다. 단지, 첨단 물질 문명 사회에 익숙해진 많은 이들의 눈 밖으로 밀려나 버렸을 지언정 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간 생존의 근간을 잊지 않고 묵묵히 올 1년을 버텨낸 농업인들이 있다. 가을의 막바지에 빼빼로를 오도독 씹어먹는 한 순간이라도 일년 농사를 마무리 짓는 농민들의 노고에 한 번 감사해 보는 시간을 가져보는 여유도 참 좋을 것 같다. 그리고 위 위키백과의 내용 처럼 빼빼로만 먹지 말고 농민들이 열심히 기른 쌀로 만든 가래떡도 먹어보는게 좋지 않을까? 

 

<얼마전까지만 해도 창밖을 내다보면 금빛으로 반짝이던 벼들도 지금은 모두 수확되고 없다.>


<호수를 사이에 두고 건너로 보이는 마을은 모두 농가다. 농업인의 날의 주인공들이다.>

 

<근처 전원 주택들도 꽤 많은 양의 텃밭 농사를 즐긴다. 물론 자급자족을 위한 것이다. 과거 텃밭에서 옥수수, 감자, 고구마, 상추, 깻잎, 등을 길러서 직접 요리해 주시던 지금은 돌아가신 외할머니가 요즘 더 생각이 많이 난다. 스스로 흙에서 누군가를 먹여살릴 창조를 해 내는 지혜는 인류의 정말 값진 유산이다. 하지만 당장 나보고 농사를 지으라면? 실패의 시간이 적지 않을 것이다.>

 

<지금은 이미 수확된 농지, 왠지 쓸쓸한 뿌듯함이라고나 할까?>

 

<전원 생활을 하면서 동네를 조깅하다보면 매 시간 변해가는 자연의 변화 무쌍함이 정말 큰 즐거움이다.>


정말 황당한 경험을 했다. 
조금전 운전해서 귀가도중
반대편 차선 골목에서 차 한대가
튀어나오더니 역주행을 해서
2차선 주행중이던 날 향해
돌진해왔다. 순간 죽음을 느꼈지만
간신히 역주행차를 피하고
갓길에 차를 세웠다. 
규정 속도 이하로 주행중이었지만
조금이라도 주위파악에 태만했다면
충분히 사고로 이어질만한 상황이었다.
역주행차는
역주행 방향으로 도로위 한 복판에
차를 세운 상태였다
놀란 마음을 진정하고 차에서 내려
역주행차로가서 마구 욕지기를 하며
문을 뚜드렸다. 창문이 내려가고
드러난 얼굴은 갓 대학생이나
됐을까? 역시나 만취상태였다. 
놈을 차에서 끌어내리고 보도에
던져놓은 뒤 차를 갓길에 주차했다. 
그리고는 다시 분이 풀릴정도로
욕지기를 해주고 경찰 부르기 전에
당장 대리기사 부르라고 협박을 했다
연신 혀꼬인 발음으로 죄송하단
말을 반복하며 주섬주섬 헨드폰을
찾는데 베터리가 없었다 
결국 내 핸드폰으로 경찰을 부를까
대리 운전을 부를까 고민하는데
버스 정류장에 서있던 구경꾼 중
한명인 아저씨가 만취자의
행선지를 묻더니
그 학생차를 운전해 자기가 직접
집에 데려다 주겠다기에 
그러라하고 돌아왔다. 
지금 생각하니 경찰을 불러
따끔한 경험을 하게 할 걸
그랬단 생각이 든다. 
그래도 아직 어린 티를 벗지못한
음주 운전자는 가기전 나에게
고맙단 말을 한다. 
황당한 마음에 모가 고맙냐고
묻자 자길 잡아줘서 고맙단다. 
어린 나이에 또 만취 상태로
운전대를 잡지 않기를.....
여러분 음주운전 노!!!

그나저나 요즘 목숨 간당간당한
경험을 많이 하네...
조심해야겠다.



 이미 (특히 한국에서) 수동 미션 사양의 자동차는 멸종되다시피 했다. 이유는 편리함 때문이겠지만 유행이나 대중문화에 취약한 한국의 특성상 멸종의 속도는 훨씬 빨랐다. 나 역시 1종 보통 면허를 딸 당시 운전해본 수동 트럭 이외에는 최근 1년 반 전까지만 해도 오토미션 자동차 운전에만 익숙해져 있었다. 그나마 항상 수동 미션의 이륜자동차를 운행해왔기에 자동 미션의 동작 원리나 조작 방식은 항상 몸에 익어있었지만 말이다. 


 현재 내가 타고다니는 차량은 코란도 TX-7으로 5단의 수동 미션을 가지고 있다. 우연찮게 중고로 구입하게 된 이 차량은 맨 처음 구입 당시 서울 발산동 근처에서 용인의 작업실까지 운전해 오면서 큰 곤욕을 치루었다. 이유인 즉, 면허 딸 당시 이외에는 수동 차량을 운전해 본 경험이 전무했기 때문이다.  RPM이나 속도계를 통해 변속구간을 인식하는 능력은 이미 갖추어져 있다고 해도 일단 왼발로 미세하게 조작해야 하는 클러치 레버가 큰 문제였던 것이다. 때문에 초반에는 도로 위에서 시동도 몇 번이나 꺼먹곤했다. 하지만 용인 작업실에 거의 다다랐을 때는 이미 수동 차량 운전에 무척이나 익숙해져 있었다. 일종의 연습을 위해 용인까지 가져다준다는 것도 만류하고 직접 운전을 고집했던 것이다. 그리고도 얼마간은 경사면에서 차량 조작에 무척 힘겨워했지만 지금은 이마저도 충분히 익숙해졌다. 모든 것이 익숙해지니 수동차 운전은 즐거움 그 차제였다.




 사실 오토 미션의 자동차는 별 연습 없이도 누구나 쉽게 조작이 가능하다. 물론 도로 교통이나 차량 크기, 엔진, 브레이크, 엑셀 등이 익숙해져야 겠지만 수동 차량의 그것에는 비할 바가 없다. 그만큼 면허따기도 쉬운데(최근에는 더 쉬워졌다고....) 이처럼 쉽게 딴 면허가 만들어낸 상대적으로 작은 책임감이 항상 교통사고 사망률 상위를 차지하는 결과를 낳지 않았을까? 


 난 수동 차량을 무척 좋아한다. 운전하는 재미도 있고 운전에 더욱 집중해야하기 때문에 운전 중 주의가 산만해 지는 일도 드물다. 꽉 막힌 도로에서도 나의 변속 기술을 연마해 가며 조금은 지루함과 답답함을 달랠 수 있다. 오토 미션의 자동차는 변속과 클러치 조작을 모두 기계가 알아서 해 준다. 하지만 운전이라 함은 브레이크, 악셀, 핸들 조작 보다는 이 클러치 조작과 변속에서 개인마다 실력차에 따른 큰 차이가 나기 마련이다. 상황에 맞게 클러치를 조작하고 각 속도 영역이나, 도로 상태, 경사면 정도에 따라 미묘한 차이를 반영해 변속을 하다보면 운전 실력이 조금씩 늘어가는 성취감을 느껴볼 수도 있다. 이런 재미를 모르면서 오토미션 운전자가 자신은 운전을 좋아한다는 말을 할 때면 늘 이해가 되지 않고는 한다. 아마도 차로 인해 생기는 부수적인 이익들을 좋아한다는 말 표현을 조금 잘못한 것이겠거니 하고는 마는 것이다. 



 오토 미션은 편리를 위해 등장한 문명의 이기이다. 편리란 것은 여유를 줄 수 있겠지만 그 여유를 어떻게 활용할 지는 인간의 몫이다. 이 여유가 행복이 될지 또는 무의미한 여유가 될지는 인간의 노력 여하에 달라지는 것이다. 하지만 대체로 오토미션이 주는 여유를 행복하게 활용하는 사람들은 무척 드물다. 그 여유를 따분함으로 승화시켜 난폭 운전을 일삼거나 무료함을 이기지 못하고 졸음운전등을 하기도 한다. 오토미션이 줄 수 있는 여유를 잘 활용하는 사람이라면 한적하고 안전한 장소에서 운전하며 경치를 감삼할 수도 있을 것이고 좀 더 운전시 주위 파악에 힘써서 얘기치 못한 사고를 줄일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오토매틱 차가 태반인 한국에서 이런 여유를 재대로 즐기는 사람은 거의 전무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지저분한 운전습관이 판치고 교통사고가 빈번한 국내 자동차 교통 실정만 보아도 충분히 납득할 만한 사실이다. 문명의 이기는 인간에게 여유를 준다. 하지만 이 여유를 현명하게 이용하지 못한다면 이 여유는 차라리 없느니만 못한 것이다. 차라리 이런 여유보다는 운전의 즐거움을 선택해 보는 것도 좋다고 본다. 


 "인간은 유사 이래로 끊임없이 '편리한 것'을 추구해 왔다. '편리한 것'이란 인간이 하던 일을 기계나 장비가 대신해 줌으로서 인간의 손을 덜어주는 것을 말한다. 그런 문명의 진화는 눈부시다. 주위를 둘러보면 자동화되어 있지 않은 것을 찾아보기 힘들다. 100원짜리 커피 한 잔 뽑아 먹는 것도 기계가 해주는 게 당연한 세상이 되었으니 말이다.

 그러나 문명의 진화가 그 대가로 인간의 퇴화를 요구한다면 정신 차려야 한다. 단추 하나로 시동을 거는 데에 익숙해진 요즘 라이더가 킥 스타트로 엔진을 못 거는 이유는 다리 근육이 퇴화되었기 때문이라던가, 오토매틱 미션 덕분에 생긴 정신적, 육체적 여유를 운전 중의 DMB 시청으로 사용하는 드라이버의 정신 상태야말로 퇴화의 증거라든가 따위의 소리는 듣지 말아야 할 것 아닌가? 나는 오토매틱의 효능을 충분히 인정하지만 그 대가로 바보가 되는 것은 질색이다."


 위는 2007년 7월호 모터바이크 잡지 기사중 이순수 기자가 쓴 '오토매틱에 관한 考現學'이라는 기사 내용중 일부를 발췌한 것이다. 장농 면허를 가졌던 아내에거 수동 자동차로 연수를 해 주면서 벌어지는 내용을 이용해 오토매틱에 관한 생각을 재미있게 서술하고 있는 글로 공감대가 가는 이야기가 참 많아서 인상이 깊었다. 문명의 이기는 많은 장점을 가지고 있지만 사용자가 충분히 현명하지 않다면 실로 큰 댓가를 요구하기 마련이다. 자신이 충분히 현명하지 못하다면 그 댓가와 이익을 충분히 저울질 해 보는 것도 현명해 지는 첫걸음이 될 수 있다.

   



 국내 거대 통신 사업자 KT가 소비자의 소중한 개인 정보를 대량 유출했다. 범죄 집단에 의해 유출된 이번 개인 정보는 다행히 경찰 조사에 의해 전량 회수되었다고는 하지만 그동안 그 정보들이 어떻게 이용되었을지 또한 2차 유출이 있었는지는 모를 일이다. 또한 이번 유출 사건이 처음이 아니라는 점도 정말 그냥 넘길 수 없게 만든다. 벌써 올해만 2번째이다. 이 처럼 유출된 개인 정보는 다양한 범죄에 사용될 수 있으며 이를 통해 소비자가 그 피혜를 고스란히 떠 안을 수 있어 더욱 큰 문제이다. 보이스피싱, 대포통장, 불법 대출 등 듣기에도 섬짓한 범죄들에 말이다. 이번 대량 유출 사건은 870만이라는 무시무시한 숫자의 소비자 개인정보가 유출되었는데 이는 KT가입자 2명 중 한 명이 개인정보가 유출되었다는 말이기도 하다. 하지만 KT 측은 고작해봐야 사과 문구를 웹사이트에 올리는 것으로 이번 일을 무마하려고 하고 있다. 


 이에 따라 한 법무법인 변호인단이 KT 측의 개인 정보 유출 건에 관하여 소송 절차를 진행중이다. 자신의 개인 정보가 유출 되었다면 단 돈 100원에 이 소송에 참여할 수 있다. 아래 링크를 통해 자신의 개인 정보 유출 여부를 확인해 볼 수 있다.


개인정보 유출 여부 확인


 불행중 다행으로 내 개인 정보는 유출되지 않았다고 하지만 그래도 역시 이 문제는 쉽게 넘어갈 수 없는 중대 사안이기도 하다. 아래는 이번 소송 절차를 진행중인 법무법인 평강측의 정보들이다. 자신의 개인 정보가 유출되었다면 꼭 소송에 참여해 다시는 이런 일이 발생하지 않도록 해 보자. 아니 이런 일이 발생하였더라도 기업체 측에서 자신의 실수에 대한 충분한 댓가를 치르도록 만들어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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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국의 연예 주간지 피플(People)은 미국 최고의 디바, 비욘세(Beyonce, Beyonce Giselle Knowles, 1981~)를 올해 최고로 아름다운 여성(2012 World's Most Beautiful Woman)으로 선정했다. 그녀는 그레미 어워드를 16회나 휩쓸었으며 R&B, Soul, Jazz, Blues 등 흑인이 아니면 쉽게 표현해내기 힘든 음악 장르들을 대중음악에 절묘하게 섞어내어, 파워풀한 댄스, 매력적인 무대와 공연 연출로 세계적으로 많은 사랑을 받고 있다. 



 사실 미의 기준이란 무척이나 주관적이고 상대적인 문제일 뿐 절대적인 기준이란 존재하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때문에 미인 대회 등의 줄 세우기식 미인 선정 방법들을 좋아하지는 않는다. 하지만 그녀, 매력적인 비욘세, 그녀가 가진 아름다움은 단지 외모에서만 뿜어져 나오는 것이 아니다.

 그녀가 가진 매력중 그 누구도 공감할 수 밖에 없는 것이 바로 그녀의 강렬한 열정이 뿜어내는 아름다움이 아닐까 한다. 더해서 절대 유행에 휩쓸리지 않는 그녀만의 뚜렷한 개성과 확고한 주관, 자부심이 더해져 그 누구도 범접하기 힘든 아름다움을 발산하고 있는 것이다. 대부분 그녀를 팝스타라는 호칭으로 표현하지만 단지 팝스타를 넘어선 예술가 갖추어야 할 내면(결국 겉으로 들어나지만)의 아름다움을 그 어떤 예술가 못지 않게 확고히 가지고 있다고 생각한다. 예술가라 불리기에도 충분한 조건들을 많이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사실 여태까지 살아오면서 연예관련, 또는 미인대회 관련, 미인선정에 쉽게 공감이 가본적이 없는데 피플지의 비욘세 만큼은 왠지 모르게 자연스레 고개가 끄덕여진다. 그녀의 진정한 아름다움은 화려하고 아름다운 외모보다는 그 내면의 뜨거운 열정에 있기 때문인 것 같다. 

   





 비영리 재단 위키미디어(Wikimedia)가 운영중인 위키백과(위키피디아, Wikipedia)는 누구나 자유롭게 사용하거나 글을 쓸 수 있는 다국적 인터넷 백과사전이다. 비영리 단체 위키미디어가 위키백과를 운영하는 의도는 무척이나 순수하다. 사용자에게 사용료를 받는 것도 아니고 광고를 도배해 이윤을 추구하는 것도 아니다. 그들은 순수하게 세계인들과 지식을 공유하기 위해 위키백과를 운영하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전 세계 5위의 사용량을 보여주는 위키백과의 제반 시설이 무료로 제공되는 것은 아니다. 구글(Google)과 같은 철저한 영리 추구집단이야 엄청나게 벌어들인 돈을 투자해 쉽게 원하는 바를 이룰 수 있겠지만 위키미디어는 그들 스스로의 순수성을 잃지 않기 위해 철저히 비 영리를 추구하고 있다. 결국 유일한 방법은 바로 기부이다. 사용자들에게 기부를 호소하는 것이 그들이 위키백과를 꾸려나가기 위해 선택한 유일한 방법이다. 

 
 이번에 위키백과 호소문을 작성한 이는 2,463개의 위키백과 문서를 작성한 사용자 앨런 손(Alan Sohn)이다. 그가 위키미디어 재단 관계자가 아니라는 점에서 더욱 호소력을 보여주고 있다. 아니, 이 호소문을 달리 해석한다면 위키미디어 재단이라는 명칭 자체가 사용자 전체를 아우르고 있다고 보아도 무방할 것 같다.

 현재 한국판 위키백과는 18만개가 넘는 문서가 작성되어 있으며 현재도 계속해서 늘어나고 있다. 18만이 결코 적은 수는 아니지만 여타 국가의 위키백과에 비하면 정말 터무니 없이 적은 숫자라고 할 수 있다. 위키백과의 본토인 미국은 비교 대상이 되지 못할지 모르지만 근처의 일본과 비교해서도 꽤 적은 숫자이다. 인구수를 고려해 비교해 보아도 결과는 마찬가지이다. 어쩌면 이런 현상은 
한국 사회가 여러모로 가지고 있는 큰 문제를 시사하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지식을 경시하고 또 그 지식을 공유하는데 너무도 인색해져 있다는 점을 시사하고 있는 것이 아닐까? 위키백과는 일종의 훌륭한 기부 문화라고 할 수 있다. 물론 기부금을 이용해 운영되고 있다는 점도 있지만, 사용자들 역시 이해득실을 벗어나 자기가 가지고 있는 지식을 기부하여 위키백과라는 콘텐츠를 키워 나간다는 점에서도 그렇다. 지식을 사랑하고 순수한 의도의 기부라는 정서가 정착되어 있는 사회가 아니라면 위키백과 같이 순수한 매체가 서있을 공간이 없는 것이 사실이다.

  한끼 밥값조차 되지 않는 단 돈 2,000원이라도 위키백과를 꾸려나가는데는 큰 의미가 될 수 있을 것이다. 조금이라도 위키백과의 도움을 받아본 경험이 있다면, 인간으로서 지식을 사랑하는 존재라면, 이번 기회에 적은 돈이라도 기부를 해 보는 것도 좋을 것이다. 아마도 나 하나의 이러한 작은 행동이 한국 사회에 기부 문화를 정착시키고 지식 경시 풍조를 뿌리 뽑을 수 있는 좋은 계기가 될 것이다. 

앨런 손의 호소문을 읽고 기부하러 가기

2010/12/15 - [세상사 잡다한생각] - 위키백과 창립자 지미 웨일스의 호소문을 읽고
2011/11/17 - [세상사 잡다한생각] - 위키백과의 지미 웨일스 또 한 번 호소하다
2011/12/05 - [세상사 잡다한생각] - 위키백과 프로그래머 브랜든 해리스의 호소문을 읽고 

 





움베르토 에코(Umberto Echo)
 

 이탈리아의 학자이자 작가인 움베르토 에코! '이 시대 최고의 지식인'라는 별칭이 전혀 손색이 없을 정도의 인물이다. 도리어 이런 극찬의 별칭이 이 분에게 부족할 정도라고 할 수 있겠다. 인문학, 종교학, 수학, 과학, 기호학, 미학, 문학 등, 평생 틀에 얽매이지 않는 지식활동을 해 온 인물로 모국어인 이탈리아어를 비롯해 프랑스어, 영어, 러시아어, 독일어, 등의 다양한 언어에 통달해있기도 하다.
 
1932년 출생하였으며 아직도 생존해 장수를 누리고 있다. 평생 한 번이라도 만나보거나 그의 강의를 들어보고 싶은 마음은 아직도 간절하다. 현재 볼로냐 대학에서 언어학을 강의하고 있다고 알려져 있다. 
 그를 알게된 원인은 그의 저서 '바우돌리노'의 국내 번역본을 읽어보면서 였다. 그 후 그의 저서 '푸코의 진자', '장미의 이름', '전날의 섬'의 국내 번역본들을 읽어보면서 그의 지식에 대한 탐미적 자세에 존경심을 품게 되었다. 오늘 이 포스팅에서 언급할 세 인물중 가장 많은 나이에도 유일하게 생존해 있는 이유는 아마도 그가 자신의 삶을 가장 즐겼기 때문이 아닐까 조심스럽게 예상해 본다. 어쩌면 이리도 방대한 지식을 재미와 위트를 버물여 멋진 작품을 만들어내는지........ 인생을 즐기고 있는 그가 아니었다면 불가능하지 않을까? 아마도 그는 지식을 쌓아가는 삶 자체를 무척이나 사랑하는 것 같다. 앞으로 아직 읽어보지 못한 그의 저서를 모두 읽어보는 것이 인생의 목표중 하나이다. 
 

칼 세이건(칼 에드워드 세이건, Carl Edward Sagan) 

 칼 세이건은 인문학 분야에도 여러가지 학위를 가지고 있지만 무엇보다 평생을 천문학자로 산 인물이다. 대학교수이자 미항공우주국(NASA)의 고문위원이었으며 매리너, 바이킹, 보이저 등의 굵직굵직한 우주 계획들을 주도했다. 1934년 출생해 1996년 백혈병으로 사망할 때까지 역시 당대 최고의 지식인으로 추앙받던 인물이다. 
 무엇보다 그의 인생 최고의 업적은 과학의 대중화를 위해 헌신하였다는 점이라고 생각된다. 우주 과학 TV 시리즈 코스모스(Cosmos)는 세계 5억 인구가 시청하였고 동명의 그의 저서 코스모스는 영어로 출판된 서적중 세계에서 가장 많이 읽힌 책으로 기록되기도 한다. 특히 그의 소설 콘택트(Contact)는 그가 단순한 과학자를 넘어서 얼마난 풍부한 상상력을 지닌 인물인지도 짐작해 볼 수 있게 해 준다. 콘택트는 이를 원작으로한 조디 포스터주연의 동명 영화로 유명하기도 하다.
 칼 세이건을 처음 알게 된 것은 중학생 시절 우연히 접하게 된 그의 저서 코스모스를 통해서였다. 이 책은 어린 나에게 이루지 못한 천문학자의 꿈을 키우게 했던 저서이기도 하다. 과학의 대중화를 위해 노력했던 만큼 우주에 관련한 방대한 지식과 상상력이 너무도 재미있게 펼쳐져있던 저서이다. 나중에 나이가 어느정도 들어서 읽게되었던 창백한 푸른 점(Pale Blue Dot) 역시 정말로 감명 깊었던 저서이다. 너무 이른 나이에 요절한 것이 무척 아쉬운 인물이기도 하다.


스티브 잡스(스티븐 파울 잡스, Steven Paul Jobs)

 지금은 너무도 유명해진 전 애플의 CEO 스티브 잡스, 최근 췌장암으로 인해 56세의 젊은 나이로 유명을 달리해 많은 안타까움을 남긴 인물이기도 하다. IT 업계 종사자로서 전무후무한 팬들을 거느린 인물이기도 하다.
어려서 나의 눈에는 그가 마이크로소프트의 빌 게이츠와 멋진 라이벌로 보였었다. 둘 다 1955년으로 동갑이라는 점도 무척 흥미롭니다. 물론 오랜 기간 빌 게이츠와는 게임이 되지 않는 삶을 살았지만 최근 그의 업적을 되돌아 보면 결국 최후의 승자는 그였던 것 같다. 물론 이 두 인물이 서로를 라이벌로 의식했을지 어떨지는 의문이지만 어린 나의 눈에는 정말 멋진 라이벌로 보였던 것 같다. 월트 디즈니의 이사라는 독특한 투잡을 해왔기도 하다. 이미 그의 업적은 단순히 IT 업계 장사꾼 이상인 것 같다. 아마도 세상을 바꾸어 놓은 인물로 평가받기에 부족함이 없을 것 같다. 


 


 전 세계인들과 지식을 공유하기 위해 위키백과(Wikipedia, 위키피디아)를 무료로 운영중인 비영리단체 위키재단, 세계 5위의 접속률을 기록하고 있지만 그들의 순수한 목적의 웹사이트 위키백과에는 그 흔한 인터넷 광고자리 하나도 찾아볼 수 없다. 그들은 순수한 지식 공유를 추구할 뿐, 비영리를 표방하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공유된 지식의 양이 점점 방대해지고 사용자들이 늘어나므로 어쩔 수 없이 더 많은 운영 비용이 필요해지기 마련이다. 하지만 그들이 선택한 것은 광고나 영리 추구가 아닌 사용자들을 향한 짐심어린 호소이다. 그들이 원하는 것은 사용자들의 진심어린 약간의 기부일 뿐이다. 

 
 그동안 위키백과를 창조한 지미 웨일즈(
Jimmy Wales)가 2차례(?)에 걸쳐 호소문을 올렸지만 이번에는 위키백과의 프로그래머 브랜든 해리스(Brandon Harris)가 호소문을 올렸다. 실무자인 그가 호소한 만큼 호소문의 설득력은 더욱 강해보인다. 위키재단, 그들의 순수한 도전을 응원하기위해, 또는 그동안 무료로 위키백과를 이용해온 고마움을 작게나마 표시해보고 싶다면 이 기회에 약간의 기부를 해 보는 것도 좋을 것 같다. 한국에서는 기부 가능한 최소 금액이 1,127원! 단 돈 천원이 조금 넘는 금액도 그들에게는 큰 힘이 되어줄 것이다. 한국에서 가능한 기부방식은 마스터, 비자, 페이팔 정도이다. 

 새로운 개념의 지식의 보고 위키백과(위키피디아, Wikipedia), 사용자들의 자발적 지식 공유를 통해 계속해서 진화해가는 신개념 백과사전이라고 할 수 있다. 사용자들이 실시간으로 자신의 지식을 공유해 현재 이 시간에도 계속해서 진화해나가고 있다. 정말로 매력적인 매체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이 위키백과의 또 다른 매력은 그 순수성에 있다. 순수한 지식 공유를 위한 도구로서 비영리를 추구하고 있는 것이다. 이 위키백과에는 다른 웹 포털 서비스에서 흔히 발견할 수 있는 작은 광고 컨텐츠 하나도 발견할 수 없다. 이 위키백과를 창조한 지미 웨일스(Jimmy Wales)가 또 한 번 위키백과의 사용자들에게 호소하고 있다. 

 

 그는 위키백과를 공공 도서관이나 공원, 또는 사원과 같다고 표현하고 있다. 위키백과를 영리보다는 사용자의 복지, 또는 순수한 지식 추구 욕구의 해소・공유 공간으로서 존재하도록 노력하겠다는 의지가 느껴지는 부분이다. 사실 인터넷 서비스에서 최고의 영리 추구 기관 구글(Google)의 경우 100만대가 넘는 서버를 가지고 있다고 한다. 하지만 위키백과는 달랑 679대 뿐이며 직원도 고작 59명 뿐이다. 하지만 고작 679대라도 비영리기관 위키백과가 이 정도 서버를 보유한 것을 보면 그들이 얼마나 큰 노력을 아끼지 않았는지 느껴볼 수 있다. 

 지미 웨일스가 우리들 위키백과의 사용자에게 호소하는 것은 자율적 기부이다. 금액도 정해져있지 않으며, 꼭 기부를 하지 않아도 위키백과를 이용할 수 있다. 하지만 이 위키백과에서 자그마한 지식이라도 얻어본 경험이 있다면, 더 나아가 위키백과를 사랑하는 사용자라면, 그들의 순수한 노력을 위해 작은 성의를 보여보는 것도 스스로에게 무척 뿌듯한 경험일 것 같다.

  

 기부 금액은 정해져있지 않다. 가장 최소단위가 한화 5,500으로 되어 있지만 other를 선택하면 더 작은 금액도 기부가 가능하다.

 

 물론 미국 위키백과에 기부하는 만큼 한국에서 보낼 수 있는 최소 기부금은 1,127원이다. 그동안 위키백과에서 조금이라도 도움을 받아본 경험이 있다면 그리 큰 금액은 아닐 것 같다.
 신용 카드를 극도로 싫어하는 나 같은 경우 평소에는 체크 카드 이외에 신용 카드를 절대 소지하지 않는다. 단지 혹시나 하는 마음에 만들어 놓은 카드가 집에 한 장 있을뿐이다. 하지만 이럴 때 비자 카드를 유용하게 써 보는 것 같다.

 물론 익명으로 행하게 되는 기부란 절대 강제되는 것이 없는 자발적인 행위이다. 그렇기 때문에 더욱 순수한  목적성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한다. 우리 나라에도 이러한 좋은 기부 문화가 잘 자리잡기를 바래본다. 그리고 이런 위키백과 지미 웨일스의 호소문도 이런 문화 정착에 큰 도움을 줄 수 있다는 생각이 든다.

 위키백과는 누군가의 자발적 기부를 받기에 충분한 가치가 있는 존재이다. 
 
 아래 링크는 내가 지미 웨일스의 호소문을 처음으로 발견했을 때 느낀 감정들을 적은 글이다.


 이웃나라 일본의 비극적인 대지진에 정말 마음 깊은 유감을 표현하고 싶습니다. 또한, 현재도 삶과 죽음의 경계를 오가면서도 희망을 잃지 않으려는 일본 국민들의 강인한 정신력과 협동력, 질서정신을 높이 평가하고 싶습니다. 
 지난 11일 그 위력을 상상하기도 쉽지 않은 9.0 규모의 대지진이 일본 센다이 동쪽 해상에서 발생에 일본 열도에 엄청난 상처를 입혔습니다. 일본 열도가 약 2.4m이동하고, 지구 자전축이 10Cm 정도 움직였을 가능성까지 제기될 정도로 실로 엄청난 위력의 지진이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이보다 더욱 큰 인명 피해를 가져온 것은 지진 후 2차적으로 밀려든 거대한 해일이었습니다. 10m이상 높이의 해일이 약700Km의 속도로 거주민이 많은 해안 마을을 덮쳤기 때문에 그 인명 피해는 상상하기 힘들 정도라고 합니다. 거대한 바닷물의 덩어리가 직접 육안으로 확인하고 피할 수 없을 정도의 빠른 속도로 마을을 덮쳤기 때문에 인명 피해는 더욱 컸으리라 생각됩니다. 4만 이상의 인명 피해를 고려해야 할지도 모른다니 정말 끔찍하고 슬픈 일입니다. 


 9.0의 강진과 강력한 해일로 주민들의 삶에 터전이고 아이들과 강아지가 뛰어놀던 마을은 그 흔적을 알아보기 힘들 정도로 폐허가 되었습니다. 

 
 우리나라도 구조대를 급파했다고 하지만 시체 10구를 발견했을 뿐 아직 생존자를 구해내지 못했다고 합니다. 그만큼 지진과 특히 해일의 대량 살상력이 얼마나 무시무시한지 짐작할 수 있게 해 줍니다. 또한 가족이나 사랑하는 지인을 잃은 가슴 아픈 사연들이 속속히 전달되어 세계인의 가슴을 아프게 하고 있습니다.

 사실 자연이 준 재앙은 정말 무시무시하지만 그 여파의 공포는 여기서 끝나지 않고 있습니다. 어쩌면 자연보다는 인간의 실수가 만들 비극이 더욱 커지지 않을지 걱정입니다. 바로 일본 동쪽 해안의 후쿠시마 원전 문제가 바로 지진과 해일의 상처로 고통 받고 있는 일본 국민들의 근심과 피해를 가중시키고 있는 또 하나의 문제입니다. 이런 극도의 위기 상황에도 불구하고 이성을 잃지 않고 질서를 유지하고 있는 일본 국민들이 세계적으로 높이 평가받고 있고 있습니다. 

 
 후쿠시마의 원자로들이 지진과 해일의 피해로 전력을 잃고 냉각수 조절이 방해되 수소 폭발을 일으키고 있기 때문에 상당한 양의 방사능이 인근으로 노출되어 현재 후쿠시마 30Km 반경 밖으로 주민의 대피를 유도하고 있으며 인근 주민들의 외출을 금지하고 방사능 피폭을 어느정도 중화 시킬 수 있는 요오드제를 배포하고 있습니다. 뿐만 아니라 인근 상공을 비행 금지 지역으로 설정하여 가중될 피해를 줄이기 위해 노력하고 있습니다. 아직도 후쿠시마 원전의 원자로들은 상당히 위험한 상태이며 최악의 경우 원자로가 녹아 핵물질이 외부로 노출될 경우 지진과 해일로 받은 피해에 또 한 번 상당한 피해을 일본 열도에 안겨줄 것으로 우려되고 있습니다.

 일본은 지진대비가 가장 잘 되어 있는 국가 중 하나입니다. 7.0 이상의 강진에도 건물들이 큰 피해를 입지 않을 정도로 내진 설계가 잘 되어 있으며 국민들도 지진피해에 잘 대처할 수 있도록 교육되어 있습니다. 하지만 역시 상상 이상의 대재앙에는 무용지물이 될 수 있습니다. 원자력 발전 능력 역시 상당히 선진국임에도 강력한 대재앙 앞에 무력함을 보이고 있습니다. 대지진과 해일로 전력을 잃은 후쿠시마의 원자로가 냉각 능력을 상실하고 과도하게 가열되거나 수소 폭발을 일으키고 있으며 근방에 상당한 양의 방사능을 퍼트리고 있는 실정입니다. 방사능 피폭이 의심되는 주민들을 격리 조치되어 제3의 비극을 낳고 있는 실정입니다. 

 
 그렇다면 우리나라는 어떨까요? 아직 일본 만큼의 큰 지진은 없었지만 우리 나라 역시 최근 잦은 지진을 겪으며 절대 지진의 안전 지대는 아니라는 것이 정설화 되어 가고 있는 실정입니다. 특히 울진 지역은  우리 나라에서도 유독 지진이 많은 지역임에도 불구하고 원자력 발전소가 가동되고 있습니다. 만약 우리나라 울진 앞바다에서 7.0 이상의 강진이 발생한다면 울진의 원자로는 안전할까요?

 우리나라는 일본이나 선진국들에 비해 지진 대비책은 정말로 미미한 수준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국가의 수도인 서울 조차 13%의 건물만이 내진 설계가 되어 있다고 하지만 제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상황은 이보다도 더욱 나쁠 것으로 생각됩니다. 그렇다면 원자력 발전소는 어떨까요? 우리나라는 지진이 무척 적은 안정한 지각위에 위치하고 있다고 합니다. 실제로 지진에 대한 피해는 크게 고려되고 있지 않은 것이 사실입니다. 내진 설계를 적용하는데 들어갈 큰 비용을 생각하면 대부분 과연 어떤 선택을 했을까요?

 이번 강력한 지진과 해일, 그리고 원자력 발전소의 위기를 겪고 있는 후쿠시마 지역 역시 9.0 강도의 지진이나 10m 높이에 700Km 속도의 해일은 거의 고려되지 않는 지역이었습니다. 하지만 인간의 얕은 지식을 비웃듯 실제로 거대한 자연의 재앙은 일어났으며 크나큰 원전 문제를 덤으로 안겨 주었습니다. 우리 나라의 원자력 발전소가 후쿠시마의 그것보다는 우수한 안전 대책을 가지고 있는 원자로라고는 하나, 역시 절대 안전하다고는 할 수 없습니다.

 원자력 발전의 안정성 역시 큰 문제이나 또 하나의 큰 문제점은 바로 원자력 발전에 대한 지나친 의존성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사실 완벽한 안전성만 확보된다면 원자력 발전만큼 고 효율의발전은 현존하는 발전 방식에서는 그 유래를 찾아볼 수 없다고 할 수 있습니다. 최초의 막대한 건설 비용만 감안하면 적은 비용으로 엄청난 양의 전력을 생산해 낼 수 있는 것이 바로 원자력 발전입니다. 또한 직접적인 환경문제를 야기시키지 않는다는 장점도 가지고 있습니다. 하지만 현재 일본 후쿠시마 원전이 겪고 있듯 안전도에 강력한 문제점을 안고 있다면 이런 장점들이 무슨소용이겠습니까? 현재 우리나라에서는 원자력 발전이 38% 정도의 전력 점유율을 가지고 있으며 화력 발전 다음으로 높은 점유율을 보이고 있습니다. 일본의 경우 27%의 점유율을 보이고 있음에도 원전에 문제가 생기자 엄청난 전력난을 겪고 있는 실정입니다. 국내의 원자력 발전 의존도를 생각한다면 같은 문제에 봉착했을 때 한국에서는 더욱 큰 전력난을 일으킬 수 있을 것으로측할 수 있습니다.

 현재 세계에서 가장 많은 원자력 전력을 생산하고 있는 나라는 미국이며 원자력에 가장 의존도가 높은 나라는 프랑스로 전체 전력 생산량의 72% 가량을 차지하고 있다고 합니다. 하지만 원자력 최대 강국인 이 두 국가가 일본의 원자력 발전소 문제를 접한 후의 자세는 어떨까요? 원자력 발전을 더욱 증가시키려던 오바마 정부는 발목이 잡혔으며 프랑스의 원자력 발전소 앞에서는 반 원자력 시위가 범 국민적으로 진행되고 있습니다. 또 다른 원자력 강국인 독일의 경우 30년 이상된 원자로 10곳을 폐쇄할 것으로 잠정 결정되었다는 소식도 들려옵니다. 그렇다면 우리나라는 어찌해야 할까요?

 이건 어디까지나 제 개인적인 견해이지만 하루 빨리 원자력 발전에 대한 의존도를 최대한 줄이고 원자로를 대체할 발전 방식을 개발해 최대한 빠른 시일 내에 원자로를 폐쇄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물론 이미 지어논 고효율의 원자력 발전을 포기하는 것이 결코 쉽지만은 않겠지만 가능한 빠른 시일내에 이루어져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때까지는 현존하는 원자력 발전소의 안전도 확보에 최대한의 노력을 아끼지 않아야 하겠습니다. 

 원자력, 현시점에 인간은 이 엄청난 자연의 에너지를 정복하고 조절하고 있는 것일까요? 과연 인간은 원자력을 충분히 제어할 수 있는 힘을 가지고 있는 것일까요? 저는 아직 그렇지 못하다고 생각합니다. 가까운 가족 중 두명이 원자력 발전소에 종사하고 있는 저이지만 무거운 마음을 안고 감히 말하건데 아직은 인류에게 원자력 발전의 위험을 완전히 제어할 수 있는 능력이 없다고 생각합니다. 눈 앞의 쉽게 얻을 이익보다는 체르노빌 원전 사태처럼 회복 불능의 끔찍한 대재앙을 막는 것이 우선이라고 생각됩니다.

 마지막으로 지진과 해일로 크나큰 고통을 겪고 있는 이웃나라 일본에 대한 걱정과 격려로 이 긴 글을 마무리 하고자 합니다. 방금 뉴스에서 들은 바로는 일본이 이번 대재앙으로 입은 피해를 복구하는데만 한화로 몇백조원 이상의 금액이 필요하다고 합니다. 아마도 일본의 문명 상태가 퇴보할지도 모를 정도의 피해을 입었다고도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하지만 특유의 국민성으로 다시 일어설 것이라는 생각은 변함이 없습니다. 아쉽게도 사라져간 많은 생명들을 위로하며 또 원전 사태가 잘 마무리 되어 더 이상의 큰 인명 피해는 일어나지 않길 바라며 긴 글을 줄입니다. 

 


 비영리 재단 위키미디어(Wikimedia)가 운영중인 위키백과(위키피디아, Wikipedia)는 누구나 자유롭게 사용하거나 글을 쓸 수 있는 다국적 인터넷 백과사전이다. 현재 전 세계적으로 전문가나 일반인을 불문한 위키 백과 사용자들에 의해 자유롭게 작성된 글은 이미 약 1600만개가 넘게 등록되어 있으며 현재도 꾸준히 증가 중이다. 한국어 위키백과는 2002년 부터 시작되어 현재 15만개 이상의 글이 등록되어 있으며 세계에서 21번째로 많은 글이 등록되어 있는 위키백과라고 한다. 그리고  이러한 위키백과는 어느순간부터 나에게 무척 소중한 존재가 되어있었다. 
 위키백과를 반대하는 이들은 위키백과의 개방성과 자유도가 지식 공유자들의 책임감과 지식의 권위성 문제를 일으키며 때로는 작성자의 개인적인 견해가 지나치게 강조된다고 한다. 그리고 미국의 보수주의 세력들은 위키백과가 과도하게 자유주의적이라는 견해를 보이곤 한다. 물론, 위키백과를 지지하는 나 조차 위키백과에 이런 문제점들이 있다고 인정한다. 하지만 이런 문제는 단순히 위키백과만의 문제는 아닐것이다. 지식에 대한 권위성이나 지식 배포자들의 책임감 여부는 과연 어떻한 기준점을 가지고 있을까? 최근 책임감을 가지고 충분히 권위성을 가진 지식을 전달할 것으로 믿어 의심치 않았던 전문가 집단 IPCC도 모종의 목적을 위해 과장된 통계 수치를 발표한 것이 밝혀져 큰 파장을 일으킨 적이 있다. 지식을 얻거나 공유하는 행위에서 그 책임감이나 지식의 권위성 여부를 흑백으로 양등분할 방법은 아마도 없어보인다. 절대 불변의 진리라고 생각되어졌던 지식은 어느 순간 새 지식으로 대체되기도 한다. 책임감이나 권위성 문제는 단순히 위키백과의 방법적인 일면이 가진 단점이 아니라 사회 통념적인 전문가, 일반인에 관계없이 지식을 공유하거나 얻는 모든 객체들이 가질 수 있는 단점이며 각자가 항상 경계해야할 대상이다.
 지식이란 어쩌면 유기적으로 움직이는 생물의 특성을 가진 존재일지도 모른다. 어쩌면 아직도 인류는 절대 불변의 진리라고 부를 수 있는 지식을 하나도 가지고 있지 못한지도 모른다. 지금도 그러한 진리를 찾아가는 과정일 뿐이며 그러기 위해서는 계속해서 자유롭게 상호작용해 가며 유기적으로 성장해 나가는 지식의 공간이 필요할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위키백과라는 자유로운 지식의 공유 공간은 무척 큰 의미를 가지고 있다고 생각한다. 
 언제부터인가 위키백과를 방문하면 화면 상단에 위키미디어의 창립자 지미 웨일스의 호소문을 읽어보라는 문구를 볼 수 있었다. 무슨 말을 하려고 저럴까? 약간의 궁금증도 있었지만 차일피일 미루다 결국 호소문을 클릭하고 읽게 되었다.
 위키백과는 위키미디어라는 비영리 단체에 의해 운영되고 있다. 지식이라는 어찌보면 인간 문명에서 가장 숭고한 존재조차 단순히 금전적 이익이나 정치적 수단으로 자주 사용되고 있는 시대이지만 위키백과는 이런 더러운 굴레들에서 벗어나 순수하게 자유로운 지식의 공유를 목적으로 하고 있다. 아무런 정치적 목적도 없이 금전적 이득에서 벗어나 순수하게 지식을 공유하는 것이 과연 가능할 것인가? 처음 위키백과를 접했을 때는 이런 의문이 들었을 뿐 큰 기대는하지 않았다. 멀리 금전적 이득을 내다본 위선이라거나 열번 양보해 순수한 의도로 시작했다고 해도 실재 눈 앞의 이득에 대한 욕망에 무릎꿇는 사례들이 대부분이니 말이다. 하지만 순수한 의도에 역시 순수하게 기대감을 갖지 못한 나의 탁한 마음에도 불구하고 위키백과는 거의 10년이라는 세월을 본래의 순수한 모습으로 남아있다. 그리고 앞으로도 계속 순수한 모습을 잃지 않고 더 많은 성장을 위해 창립자 지미 웨일스는 호소문을 통해 사용자들의 기부를 부탁하고 있다. 
 10년 가까이 위키백과를 운영해 오면서, 그리고 비영리 목적으로서 믿어지지 않을 정도로 성공적인 성과를 보여오면서 아마도 적지 않은 주위의 유혹을 견뎌왔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실재 쌓인 자료의 양이나 이용자 수만 보더라도 금전적 가치로 환산하고자 하는 주위의 유혹이 항상 비영리 단체 위키미디어를 옭아매려고 하였을 것이다. 게다가 현재도 계속 늘어나는 사용자들과 지식을 생각해 보면 갈수록 따로 구체적인 이윤 추구 사업이 없는 비영리 단체로서 금전적 경영난에 허덕일 수 밖에 없었을 것이다. 이럼에도 불구하고 위키미디어가 선택한 것은 호소문을 통한 기부 부탁이다.
 지미 웨일스는 기부라는 단어를 사용했지만 이 단어는 어쩌면 무적절한 단어일지도 모른다. 자유롭게 지식을 공유하고 얻는 것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위키백과의 사용자라면 이 위키백과는 남의 것이 아닌 바로 우리들 자신의 것이다. 자신의 것에 기부를 한다는 말은 조금 문제가 있는 것이 아닐까? 아마도 자신을 위해 자연스럽게 하게되는 투자라고 해야 더 오를지도 모른다. 만약 위키백과에 조금이라도 도움을 얻었다거나 지식을 얻거나 공유하는 것을 사랑하는 위키백과 사용자라마면 지금 자신의 호주머니를 뒤져 약간의 금전이라도 자신을 위해 기부라는 이름의 투자를 해 보길 바란다. 이는 자신뿐 아니라 각자의 자손들에게 물려줄 지식의 보고에 대한 투자일지도 모른다.


 어디서나 자유롭게 지식을 얻을 수 있어 많은 도움이 되었을 뿐 아니라 언젠가는 대단치는 못한 지식이라도 내가 좋아하는 분야들의 지식들도 위키백과의 공간을 빌어 남들과 공유해 보고자 하는 욕구도 있다. 그때까지 지금처럼 수순함을 잃지 않고 꾸준하게 성장해 나가는 위키백과이기를 간절히 바래본다. 


 제가 블로그를 시작한 지는 얼마 되지 않았지만 블로그를 시작하고 6개월간 관계를 맺어 온 믹시라 어느정도 정이 들었다면 들었습니다. 하지만 요즘 믹시의 상태는 그리 좋지 않습니다. 급기야는 최근 블로그 페이지가 원할하게 열리지 못하도록 발목까지 잡곤 합니다. 믹시 위젯 하나만 문제를 일으킨다면 그냥 울며 겨자 먹기로 위젯을 사용하겠지만 믹시 위젯에 문제가 생길때 아예 제 블로그 페이지가 원활하게 표시되는 것까지 방해를 하고 있습니다. 정말 안타깝습니다.현재 그동안 믹시를 운영하던 Endless 9 님은 새로운 메타 블로그인 올포스트로 자리를 옮기고 새로운 운영진이 믹시를 이어 받은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하지만 새로운 운영진에게 믹시 운영이 아직 무리인지 믹시 사용에 큰 불편이 느껴져 안타깝기만 합니다. 계속 이런 문제가 발생한다면 많은 블로거들이 믹시를 등질텐데 그 동안 믹시를 아끼고 사랑했던 블로거들에게는 참 안타까운 사실인 것 같습니다. 


 최근 티스토리에 기본 제공되는 믹시 위젯을 사용하면 원활히 서비스가 제공되다가 갑자기 믹시 위젯이 열리지 않고 해당 페이지가 정상적으로 열리는 것 조차 방해하는 치명적인 현상을 보입니다. 그러면 선택할 방법은 하나 믹시 위젯을 표시안함 시키는 방법밖에 없습니다.


 이렇게 믹시 위젯이 표시 되지 않는 것은 물론 페이지가 정상적으로 표시 되는 것 조차 방해합니다. 몇번 이런 현상이 나타났다 사라졌다를 반복하고 있습니다. 그럴때 마다 믹시 위젯을 사용했다 안 사용했다를 반복하게 됩니다. 제가 모르는 사이 이런 현상이 제 블로그에 나타난다면 많은 방문자들이 제대로된 페이지를 보지 못하고 블로그를 떠날 것입니다. 정말 심각한 문제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렇게 믹시 위젯을 제거 하면 페이지가 바로 빠른 속도로 정상 표시됩니다. 정말 안타깝습니다. 빠른 시일 안에 정상 서비스 되지 않는 다면 믹시를 사용하지 않을 수 밖에 없습니다. 그만큼 현재 심각한 문제를 일으키고 있는 것입니다. 운영 주체가 바뀐 뒤로 계속 문제를 일으켜 왔지만 많은 문제가 정상화 된 반면 페이지의 정상 표시까지 방해한 것은 최근 약 몇주 전 부터인 것 같습니다. 좋은 시스템을 가지고 있는 믹시인 만큼 많은 블로거들의 사랑을 받아온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빠른 시일 내로 정상 서비스를 회복해 주었으면 하는 바램입니다.


 최근 애플(Apple) 관련 정보 사이트 애플인사이더(Appleinsider)에 애플의 아이폰(iPhone) 운영체제 iOS의 다음 버전인 4.1 버전의 출시를 앞두고 iOS4.1 베타 버전을 체험한 리뷰글이 올라왔습니다. 하지만 이 글을 가지고 몇몇 언론사와 블로그가 황당한 기사및 글들을 올립니다. 


 저도 애플사에 많은 관심을 가진 사람인지라 가끔 애플인사이더에 들어가 글들을 보곤 합니다. 그리고 위에 언급한 기사도 이미 본 상태였습니다. 그런데, 웹서핑 도중 '애플, 데스그립(Death Grip)을 해결한 iOS4 릴리스 임박?'이라는 제목의 국내 기사를 접하게 됩니다. 본 이야기에 들어가기에 앞서 데스그립이 무엇인지 모르는 분들을 위해 간단히 설명드리자면 현재 국내외적으로 큰 관심을 불러일으키고 있는 아이폰4에 쥐는 방식에 따라 '수신율을 저하시키는 결함이 있다.', '결함이라고 할 정도는 아니다.' 라는 논란을 일으키고 있는 문제의 별칭입니다. 저 역시 이 기사를 접하는 순간 무척이나 놀라며 이미 한 번 훌터 본 애플인사이더의 최신 글들을 다시 한번 훌터봤습니다. 아니나 다를까 애플인사이더의 iOS4.1 관련 최신글은 역시 위에 언급한 글 뿐이었습니다. 이 문제의 기사와 애플인사이더의 글을 유심히 비교해 본 결과 데스그립 관련 이야기만이 국내의 기사에 덧붙여졌으며 다른 내용들은 위에서 언급한 애플 인사이더의 글을 인용한 것임이 분명했습니다. 그렇다면 왜 기사의 출처라고 밝힌 글에서 조차 찾을 수 없는 사실을 기사에 가져다 놓은 것일까요? 단순한 실수일 수도 있고, 이목 집중을 위한 조작이였을 수도 있습니다. 또는 다른 목적이 있을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가장 뚜렷한 사실은 언론사의 독자들에게 확실하고 명백한 사실만을 전달하려는 의지가 부재한다는 사실입니다. 그렇다면 이 언론사는 독자들이 신뢰감을 가질수 있는 언론 매체로서의 자질이 무척이나 부족하거나 아예 없다고 보기에도 전혀 문제가 없습니다.  그 누구도 사실이 아닌 거짓 정보를 얻기를 원하진 않습니다. 


 저 같은 경우 현재 국내 언론에 대한 불신감이 무척 높은 편입니다. 때문에 신문, TV 등 여러 매체를 통해 흘러나오는 소위 메이저 언론 매체의 정보를 가능한한 피하거나 그대로 믿지 않는 버릇이 생겼을 정도입니다. 현재 블로그를 하면서 제가 어려서부터 많은 관심을 가지고 있었던 애플사에 관한 언론 정보를 많이 접하게 됩니다. 하지만 이 정보들의 정확성이나 진실성은 무척 저급한 수준입니다. 최근 애플의 CEO 스티브 잡스(Steven Paul Jobs) 사칭 트위터(Tweeter)를 그대로 사실무근의 기사화 한 것을 본 적도 있습니다. 그러면서 국내 언론의 신뢰성에 다시 한 번 회의감을 느끼곤 합니다. 현실 왜곡, 또는 없는 사실 덧붙이기, 편파적인 기사쓰기, 어설픈 자기 주관을 기사에 넣기 등 이미 언론 매체로서의 신뢰도에 큰 문제점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과연 기자 한명 한명의 자질 문제일까요? 그런 자질 부족의 기자들을 사용하거나 만들어내는 책임은 과연 누구한테 물을까요? 잘못된 정보로 잃어버리고마는 독자들의 소중한 시간은 누가 보상해주나요?

 마지막으로 애플인사이더의 글 원본 내용을 링크해 놓고 글을 마치겠습니다.



 오늘 들어만 보던 일이 저에게 발생했습니다. 제 블로그가 얼마동안 악성 코드를 배포한 것입니다. 위의 알림창은 문제 발생 당시 사파리5로 제 블로그를 접속했을 때의 경고문구입니다. 물론 제 의도에 의한 것은 아니고 몇몇 html 코드가 악성코드 유포자에 의해 악용된 것입니다. 문제의 코드는 바로 구글 에드센스 포럼에서 배포하는 애드센스 부정 클릭 방지 코드인 마이센스였습니다. 예전에 구글 애드센스를 사용할 당시 붙여 놓았던 코드를 에드센스를 내리고 나서도 잊고 삭제하지 않고 있던 코드가 문제를 일으킨 것입니다. 만약 마이센스를 사용중인데 같은 문제가 발생하신다면 한 번 이 점을 의심해 보시길 바랍니다.
 해당 문제의 원인 발견과 문제 해결은 채현님의 블로그 글을 통해 이루어졌습니다. 정말 다시 한 번 감사드립니다. 


  문제의 코드는 블로그 접속시 위와 같이 rook.html 이라는 파일을 다운 받도록 합니다. 파이어폭스나 오페라, 크롬의 경우 다운로드를 받겠냐는 질문창이 뜨므로 다운 받지 마시길 바랍니다. 익스플로러 같은 경우 아무런 알림도 없는 것으로 보아 자동 다운 받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사파리의 경우 상단의 경고창이 나타나고 무시하고 들어 갈 경우 다운되는 것 같습니다. 일단 다운 받으셔도 가능한한 열어보지 마시길 바랍니다. 해당 파일이 어떻한 문제를 일으키는지는 저도 아직 모르겠습니다. 그리고 만약 자신의 블로그가 같은 문제를 일으킨다면 다음과 같은 마이센스 코드를 삭제해 보시길 바랍니다. 

<script src="http://log.adsystem.kr/adinfo/mysense.js.html?id=본인아이디&time=24&count=3&bmode=hide" type="text/javascript"></script>

 아~! 나름 놀랬습니다. 이런 일을 경험해 보다니 말입니다. 같은 경험을 하시는 블로거 분들 위와 같이 일단 조치하시길 바랍니다. 위 악성코드가 발생시키는 문제점은 저도 아직 모르겠지만 일단 바이러스 백신 프로그램도 꼭 한 번 돌려 보시길 바랍니다. 그리고 혹시라도 긴 시간은 아니었지만 문제가 있던 시간동안 악성코드에 의해 rook.html파일을 내려 받으신 분들이 있다면 해당 파일을 찾아 삭제하시고 백신 프로그램을 돌리시길 권해 드립니다. 많은 수의 블로그가 구글 애드센스를 사용하고 있으며 때문에 마이센스 코드도 많이 사용되고 있을 것입니다. 위의 문제가 보여지는 사이트 방문시 일단 파일 다운을 하지 마세요. 위의 파일 이름으로 구글링을 해 보니 마이센스 뿐 아니라 몇몇 광고 코드에도 작동하는 것으로 보이며 배포지는 중국일지도 모르겠습니다. 누가 배포하고 있는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이런 악의적인 행위는 건전한 인터넷 문화 조성을 위해 자제했으면 하는 바램입니다.


 저는 4월경 그동안의 노예계약을 마치고 아이폰을 구입해 새로운 휴대폰으로 가지고 다니고 있습니다. 원래는 그냥 소위 스마트폰이라는 무료 단말기를 싸게 구입해 사용해 볼까 하는 생각이었지만 어쩌다 보니 비싼 아이폰을 구입해 사용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정말 사용할 수록 드린 금액이 아깝지 않은 놀라운 기기라는 생각이 듭니다. 아이폰을 새로 가입 당시 저는 신도림 근처의 XX노 마트의 아이폰 전문이라는 한 매장의 호객 행위(원래는 호객 행위를 무척 불편해 합니다.)에 발이 이끌려 소위 3면제로 거래를 하게 됩니다. 하지만 이 3면제 거래는 어쩌면 함정이 도사리고 있을 수도 있습니다. 제 경험을 간단히 소개해 봅니다.
 휴대 전화기 가입은 사실 깊이 따져보면 상당히 복잡한 요소가 많다고 생각합니다. 더욱이 대부분의 휴대 전화 사용자가 빨라봐야 2년에 한 번 겪는 일이니 말입니다. 때문에 이 거래에 많은 지식을 가지고 있는 판매자 앞에 정신 없이 많은 서류 항목과 이것 저것 이해하기 힘든 요금제 등 사전 지식이 없는 소비자는 약자일 경우가 많습니다. 때문에 이번에는 사전 지식을  많이 얻고나서 매장을 방문해 보았습니다. 그리고 채권료, 가입비, USIM비를 면제해 준다는 3면제 해택을 받고 아이폰을 거래했습니다. 채권료란 기기를 할부(대부분 무료가 아닌 기기라면 할부 구매를 하겠죠?)로 구매하는데 드는 수수료 이며 가입비는 이동 통신사에 지불하는 가입비입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USIM비란 휴대 전화기에 들어가는 자그마한 USIM카드를 구입하는 금액입니다. 같은 통신사로 계속 유지한다면 이전의 USIM카드를 새 기기에 넣는 것으로 따로 새 카드를 구입할 필요가 없습니다.
 그렇다면 이야기의 본론을 말해보죠. 저 같은 경우 3면제 거래를 할 당시 원래 3면제를 해 주는 매장이 아니었습니다. 단지 흥정에 의한 거래였습니다. USIM비는 기존의 카드를 사용하였고 채권료와 가입비는 매장이 지불해 주기로 하였습니다. 문제는 가입비에서 발생했습니다.
 계약에서는 매장에서 분명히 가입비를 지불해 주기로 되어있었는데 다달히 8천원이 빠져나가더군요. 가지고 있던 매장 명함을 통해 연락해 문의해 보았습니다. 그러자 매장측 답변은 가입비는 3개월에 걸쳐 한달에 8천원씩 총 2만 4천원이 부과되며 8월 4일날 2만 4천원이 저의 계좌로 입금된다는 것이었고 그렇한 설명을 저에게 했다고 하는 것입니다. 저는 분명히 들은 기억이 없었지만 8월 4일 까지 기다려 보기로 하고 아이폰의 캘린더 앱에 이 날짜를 기록해 놓았습니다. '8월 4일 가입비 입금되는 날' 아이폰을 사용하면서 생긴 메모 습관입니다.
 또 약 한달의 시간이 흐르고 문제의 8월 4일이 되었습니다. 당일 밤 계좌를 확인해 보았지만 들어왔어야 할 2만 4천원의 거래 내역은 찾아볼 수 없었습니다. 다음날 하루를 더 기다려보고 8월 6일이 되었지만 역시 가입비가 들어온 내역을 찾을 수가 없었습니다. 다시 매장으로 전화를 했습니다. 저와 거래한 매장 직원을 찾아서 따져보았습니다. 제 이름을 확인하곤 6월 2일날 이미 입금했다는 황당한 발언을 합니다. 또 한 번 속는 샘 치고 6월 2일 거래 내역을 조회해 봅니다. 역시 가입금이 들어온 내역은 찾을 수가 없었습니다. 이 중간에도 여러 번 전화통화가 이루어졌지만 먼저 전화를 준다던 약속은 단 한 번도 지켜지지 않았습니다. 약이 바짝 오른 저는 다시 매장에 연락해 마구 쏟아부어주게 됩니다. 물론 성숙한 행동은 아니지만 제가 원래 성질도 있는데다 그동안 참은게 한 꺼번에 폭발합니다. 당장 안 넣으면 거래 내역을 뽑아들고 가서 확인한 후 사실 확인에 사용된 전화비와 들인 시간, 정신적 피해에 대한 보상까지 모두 받아내겠노라고 엄포를 놓았습니다. 단 3분만에 입금을 시키더군요.
 이 사건에서 몇가지 추측이 가능합니다. 이 매장측이 주장하는데로 정말로 6월 2일날 입금을 시도하였으나 실수로 제 계좌 입금을 빠트린 것일까요? 더 나아가 제가 이렇게 전화하기전에는 가입비를 입금할 생각이 있던걸까요? 물론 지불할 의사가 있었는데 실수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여러번 말을 바꾸고 전화 연락하겠다던 약속을 계속 어긴 행동에서 여러가지 안 좋은 방향의 추측이 가능한 것이 정말 안타깝기만 합니다. 아마도 제가 여러번에 걸쳐 제 기분 상해가며 화를 삭히고 전화를 하지 않았다면 가입비를 돌려받지 못했을 것입니다.
 또한 3개월이라는 시간은 무언가 기억을 까먹기에 충분히 긴 시간입니다. 저 같은 경우 예민한 편이라 그래도 받아야 할 금액을 받아냈지만 자주 덜렁대거나 깜빡깜빡 하시는 분들이 이런 경우 어떻게 될까요. 아마도 자신이 받아야할 가입비를 돌려받지 못하고 그냥 없었던 일이 될 수도 있습니다. 그렇다면 이 가입비들은 부당하게도 이 파렴치한 휴대 전화 매장의 수익으로 고스린히 남아버리게 될 것입니다. 과연 이런 일을 겪은 사람이 저 뿐일지, 그리고 가입비를 돌려받지 못한 것을 모르고 넘어간 분들이 얼마나 될지 궁금해집니다. 단 돈 2만 4천원을 못 받은 것보다 부당한 행위로 이득을 취하는 못된 장사꾼 근성이 원하는 목적을 이루는 것이 더욱 분한일입니다. 혹시 3면제 계약을 하시는 분들은 이 점 숙지하시고 받아야 할 금액과 날짜, 그리고 거래한 매장과 직원을 정확히 메모하시어 부당한 대접을 받으시는 일이 없길 바랍니다.
 돈이란 무엇일까요? 자신의 양심과 바꾸어서라도 얻어야만 할 만큼 큰 의미가 있을까요? 우리는 물질 만능주의 시대를 살아가고 있습니다. 때문에 그 금전적 물질을 얻기위해 부당한 방법까지 동원해가며 양심을 파는 인간들의 수도 갈수록 늘어나고 있습니다. 이런 파렴치한 인간들이 늘어나는 것을 막기위해서는 현명한 소비자의 바른 행동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고작 2만 4천원때문에 귀찮은 행동 하고 싶지 않다고 하시는 분들도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다시 한 번 말씀드립니다. 자신이 귀찮아서 하지 않았던 행동때문에 이런 파렴치한 장사꾼들의 설자리는 점점 넓어져만 갑니다. 설자리가 많다면 그곳에 서 보려는 사람들도 그만큼 많아지겠지요. 제 블로그 방문자 한 분 한 분이 정당히 찾아야 할 권리를 찾는 현명한 소비자들이시길 바랍니다. 그런 현명한 소비자가 늘어날 때 위와 같은 파렴치 장사꾼들의 설 자리도 줄어들겠죠.
 

 이글은 지극히 주관적일 수 있습니다. 읽기전에 주의해 주시길 바랍니다. ^^
그리고 아래의 이미지 출처는 flickriyoon.pe.kr님의 아이폰 4 입니다.

 이번주 토요일 겸가겸사해서 아직 국내에 정식 판매되지 못한 아이폰 4가 전시되어 있는 안양에 위치한 모 IT전문샵을 방문해 보았다. 국내에 아직 정식으로 수입된 바가 없는 아이폰 4와 아이패드를 만져볼 수 있는 몇 안되는 장소이기도 하다. 가장 안타까운 점은3G 통신망의 수신 강도를 직접 경험해 볼 수 없다는 것이다. 
 처음 아이폰 4를 손에 쥐자 상당한 충격이 몰려왔다.역시 애플의 디자인이다 싶은 빼어난 디자인과 선명한 디스플레이 성능에 놀라움을 금할 수 없었다. 전후면 강화 유리를 사용하여 약간 묵직한 느낌을 주는 아이폰 4는 쥐는 감촉이 탁월했으며 빛에 반사되는 미려한 느낌이 무척 세련되어 보였다.
 중요한 점은 소위 데스그립이라 불리는 안테 나 문제였는데 실재로 처음 여러 방법으로 아이폰 4를 쥐어보면서 느낀 점은 그 부위를 억지로 누를 생각이 없는 한 별로 그 부위를 만질 일 이 없다는 것이었다. 무심코 이리저리 쥐어봐도, 같이 온 일행에게 쥐어보도록 해도 그리 큰 문제가 되진 않을 듯 싶었다. 그래도 이런 현상에 불편을 느끼고 불만을 가진 사람이 있다면 이는 분명히 개선해야될 점일 것이다. 비록 불가능할지라도 기술의 발전은 완벽이라는 한가지 방향을 향해 매진해야 할것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현재 완벽이라는 단어를 사용하기에 걸맞은 상품이란 단 한 개도존재않는 것이 사실이다. 
 그렇다면 대다수의 아이폰 4 사용자가 큰 불편을 느끼지 않거나 불편을 느껴도 무시해버릴 정도의 이 데스그립 문제가 왜 여러 언론사들이 펄쩍 뛸 문제고 특히 국내 언론에서는 비난 일색의 기사를 쏟아내는 원인이 되는 것일까? 물론 미국의 여러 유명 IT리뷰어들이야 어느정도 정답에 가까운 짐작이 가능하다. 현재 엄청나게 팔리고있으며 항상 IT업계 논란의 중심에 있는 애플의 아이폰 4를 거침없이 비난함으로서 그들이 얻을 주목효과는 실로 놀랍다. 아마도 이렇게 엄청나게 팔리고 있는 기기에 대한 칭찬이나 냉정한 평가보다는 비난이 단기적으로 얻을 수 있는 효과는 엄청날 것이다. 그렇다면 비난 일색의 국내 언론은 무엇때문일까? 물론 미국의 유명 IT리뷰어들과 같은 의도일 수도 있으며 그 밖에도 여러가지 상상이 가능하지만 역시 증거가 없다면 비약일 뿐이다. 나는 국내 언론 매체들처럼 증거도 없는 비난을 하고싶지는 않다. 하지만.
 과연 국내에 언론 매체를 통해 아이폰 4의 결함 기사를 쓰는 이들중 몇명이나 현재 아이폰 4 서비스중인 국가에서 이 기기를 충분한 시간을 들여 사용해 보았을까? 만약 이런 경험이 없다면 단지 미국 언론 매체의 몇몇 보도나 IT리뷰어들의 특정 분류만 인용해 사용하고 있다는 결론이 나온다. 이렇다면 정확성과 객관성이 충분히 전제된 언론 매체의 정보인지는 의문이 남을 수 밖에 없다. 충분이 언론 매체가 가져야할 의무가 전제되지 않았다는 점은 정말 슬픈 일이다. 이쯤 되면 언론 매체 역시 이윤 추구만을 목적으로 정보를 상품 포장해서판매하는 하나의 거대한 기업일 뿐이다. 게다가 소비자에게 왠만한 대기업보다 더 큰 상처를 남길 수있는 존재이다.
 소위 애플 제품의 선호하는 소비자층을 악의를 가지고 비하해서 부르는 '애플빠'라는 비속한 단어가 국내에서는 쉽게 사용되고 있다. 사실 블로그를 시작하기전에는 알지도 못하는 단어였다. 그리고 미국 몇몇 언론은 애플을 무슨 종교단체로 비유하거나 애플 제품의 소비자들을 이 종교단체의 광신도 쯤으로 비하하기도 한다. 두 부류 모두 겉으로 보기에 달라보일지 모르지만 누군가를 비하하는 것이 목적이라는 측면에서 같은 맥락을 가지고 있다. 또한 이런 행위를 마치 소비자의 권익을 보호한다는 듯이 여러 포장지를 색색으로 사용하곤 한다. 하지만 간과해서는 않될 문제가 있다. 마치 소비자의 권익을 수호하는 것처럼 포장하지만 사실 그들이 하고 있는 것은 소비자의 권익 보호가 아니라, 도리어 특정 소비자들을 비하하는 것이다. 애플 제품을 사용하는 이들도 엄연한 소비자이다. 그들도 자신의 소중한 금전을 소비하기에 앞서 충분한 판단을 하는 엄연한 소비자들이다. 아이폰 4는 판매가 시작되고 몇주 되지 않아 300만대 이상이 팔려나간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렇다면 이 기기를 구입한 300만 이상의 소비자들은 정말 무지하고 몽매하여 자신의 소중한 금전을 자신들을 무시하는 회사가 만든 결함 기기를 사기위해 허비했다는 말인가? 그리고 만약! 만약에 그들이 무지 몽매한 소비를 하고 있다고 해도 그 누구도 공개적으로 그들을 비난할 권리는 없는 것이다. 소지자들이 어디에 소비할 지 강요할 권리는 그 누구에게도 없는 것이다. 나는 진짜 소비자를 우롱하는 주체가 누구인지 다시 한번 생각하게 된다. 


 먼저 제가 이 글을 쓰는 의도를 설명하겠습니다. 저는 어려서 부터 애플 제품을 사용한 경험이 있으며 애플 회사의 제품에 어느정도 호감도 가지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글은 애플이라는 특정 회사를 옹호하기 위해 쓰는 글이 아닙니다.  제가 애플이라는 기업에 어느 정도 호감을 가지고 있지만 저 역시 한 명의 소비자로서 애플이 좋지 못한 행위로 소비자를 기만하였고 그리고 그러한 기만에 대한 뚜렸한 증거가 존재한다면, 제가 이러한 허물까지 덮어둘 만큼 관대한 사람도 아닙니다.
 마땅한 비난을 들어야할 상황이라면 저 역시 비난의 화살을 거침없이 날릴 것입니다. 
 제가 이 글을 쓰는 이유는 위에서 말한 바와 같이 애플이라는 특정 기업을 옹호하기 위한 것이 아닙니다. 옳지 못한 국내 언론의 행태에 대한 실망감을 표현하기 위해서 입니다. 현재 국내에서도 판매가 되지 않은 아이폰 4 라는 기기에 대하여 객관성이나 정확성을 가장 중시해야할 언론 매체들이 한 쪽 의견에 편파적이거나 편협한 기사들을 대량 생산하고 있습니다. 그 중에는 사실 무근, 일부 사실에 대한 과대 포장, 명예회손적인 발언도 서슴치 않는 기사들이 난무하고 있는 실정입니다. 간단한 인터넷 검색만으로도 이런 대량 생산된 기사(?)를 잔뜩 접해볼 수 있습니다. 이런 황당한 현상이 발생하는 이유에 대하여 저 역시 증거가 충분치 않은 예측을 하고 싶지는 않습니다. 하지만 이미 이런 언론 매체가 내 놓는 무책임한 정보를 쉽게 믿을 수는 없는을 것 같습니다.
 서론이 길어졌지만 제 글의 결론의 내리고자 합니다. 아이폰4 라는 기기가 정말로 국내 언론들이 대량 유포하고있는 기사들의 사실 여부는 곧 다가올 아이폰 4 판매 첫날로버터 30일이 되는 이번 달 23, 24, 25일경 소비자들의 아이폰4 환불 비율로 어느정도 윤곽을 잡을 수 있을것입니다. 현재 아이폰 4는 판매 시작 첫날 전세계적으로 150만대 이상이 판매된 것으로 추정되고 있습니다. 이 사실 여부를 판단하기에 충분한 인원수라고 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이들 사용자들은 한 달이라는 시간을 들여 충분한 아이폰 4 사용 경험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가장 신빙성있는 정보를 줄 수 있는 사람들은 이들 사용자들이지 국내의 언론매체가 아닙니다. 물론, 대량의 아이폰 4 유저들이 환불을 요구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이 역시 결과일뿐 이 결과도 현재 언론이 무책임하게 뿌리고 있는 신빙성 없는 정보에 대한 변명은 될 수 없을 것입니다. 제 의견에 대한 의문이 있으신 분들은 아래에 제가 쓴 포스팅의 글과 댓글들을 확인하시길 바랍니다.
 언론 매체는 정확하고 객관적인 정보전달의 수단이어야지 독자들의 의견이나 견해를 조종할 권리는 없습니다. 





 지난 미국 현지 시간 16일 애플사는 아이폰 4의 소위 데스그립이라 불리는 수신율 관련 안테나 결함에 관하여 30분 가량의 컨퍼런스를 통해 공식 입장을 표명하였다. 컨퍼런스의 주요 내용은 수신율 문제는 아직 모든 스마트폰들이 가지고 있는 문제이며 결함이라고 할 수 없다는 내용이다. 그렇지만 애플사는 29$의 범퍼 케이스를 무상 지급할 것이며 이미 범퍼 케이스를 구매한 고객에게는 해장 금액이 환불될 것이며 그래도 만족하지 못하는 고객에게는 사용 시간 30일 이내에 전액 환불이 가능하다는 것이다.
 나는 어려서 부터 애플사의 제품들과 인연을 가져왔으며 그들의 제품에 녹아있는 창조 정신에 무척 강한 인상을 받아왔었다. 그리고 우리 나라의 여러 언론 매체를 통해 아이폰 4 의 결함이라는 기사를 접했을 때 안그래도 애플의 CEO 스티브 잡스의 좋지만은 않은 건강상태와 적지만은 않은 연세, 그리고 갑작스레 엄청나게 증가해버린 애플의 덩치가 이 회사의 마인드에 좋지 않은 영향을 미칠 수도 있겠다라는 걱정아닌 작은 걱정(어쨌든 내 기업이 아니므로)을 해오던 터라 적지 않은 실망감을 가지게 되었다. 그래서 관련 포스팅도 한 바가 있다. 하지만 시간을 들여 여러 정보를 접해보다 보니 애플사에 대한 실망감은 점차 다시 한 번 국내 언론 문화에 대한 강한 실망감으로 변화되어갔다. 
 지금 나, 글쓰는 이는 사실 블로그라는 새로운 취미를 가지기 전에는 국내의 언론이나 TV쇼 프로그램 등에 큰 실망감을 가지고 있었으며 의식적으로 이런 매체를 피하고 있은지가 꽤 되었다. 하지만 이 블로그라는 흥미로운 취미를 가지게 되면서 인터넷을 통해 여러 매체들을 다시 직 간접적으로 접하게 되었다. 그러면서 특히 국내 소위 메이져 언론사들의 뉴스(?), 혹은 기사(?)들을 많이 접하게 되었다. 역시나 길지 않은 블로그 활동을 하면서 이런 언론 매체들은 나에게 여지 없이 큰 실망감을 안겨주었다. 
 사실 이 번 아이폰 4를 만져본 국내 소비자들은 극소수에 불과할 것이다. 그리고 아직 국내에 정식 서비스된 적이 없으니 국내 실정에서는 아직 뭐라 말할 만한 정확한 증거를 가지고 이 문제를 이야기 할 수 있는 사람을 없을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국내 언론 매체들은 왜 이렇게 많은 양의 아이폰 4 수신 불량 기사들을 쏟아내는 것일까? 뿐만 아니라 정확한 증거나 확신할 만한 증거가 존재하지 않는 실정에서 단점이 강조될만한 제목만을 골라 이런 기사들을 쓰고 있는걸까? 그뿐이 아니라 출처 기사를 따라 들어가 보면 일부 문장만의 의미를 왜곡하여 표현하거나 심지어 없는 이야기를 만들기까지 했다. 도대체 독자나 시청자의 냉정하고 공정한 판단의 도구가 되어야할 언론 매체가 왜 이런 행위를 벌이고 있는 것일까? 독자의 수준을 낮게 폄하하고 저지르는 만행이 아닌가? 왜 이미 아이폰 4가 발매되어 성공적인 판매고를 기록하고 있는 이웃나라 일본에서도 그렇게 많지 않은 아이폰 4 수신 불량 기사가 왜 아직 아이폰 4가 발매되지도 않은 우리 나라에서는 이토록 대량생산되는 것일까? 반대로 국내 일부 메이저 기업의 제품들에 대한 기사들은 왜 칭찬 일색일까? 정말로 국내 기업의 제품이 그리도 하자없이 우수하기 때문일까? 아이폰 4보다 월등히 뛰어난 기기이기 때문일까? 그리고 대체로 중립적인 입장인 일본의 기사에 비해 우리 나라의 기사는 왜 좀 더 단점에 대하여 자극적인 것일까?
 사실 아이폰 4의 수신 불량 문제는 단순한 트집이 이리 커진 이야기 일 수도 있다. 미국내에서 아이폰 4를 구입해 사용하고 있는 몇몇 지인들 역시도 기존 휴대폰 사용 방법으로도 아무런 불편 없이 이 기기를 사용하고 있으며 왜 언론이 그렇게 문제삼는지 잘 모르겠다고한다. 그리고 주위에 아이폰 4를 사용하는 이들은 모두 상당한 만족을 하며 이 기기를 사용하고 있으며 환불을 생각하고 있다는 사용자는 본적도 없다고들 한다. 도리어 정말로 놀라운 기기라고들 한다. 심지어 국내 모 메이저 기업의 스마트폰 개발 부서에 근무하는 지인도 자신들의 제품보다 아이폰을 더 선호하고 아내와 함께 구입해 사용하고 있다. 그리고 실재로 애플 측의 발표에 의하면 아이폰 4에 불만을 가지고 애플 케어에 연락해 온 소비자들의 비율도 무척 미미한 수치라고 한다. 물론 애플사측에서 발표한 통계이니 어느정도 걸러들어야할 말이긴 하지만 말이다.  
 왜 이런 현상들이 일어나는 것일까? 왜 실제 아이폰 4를 사용하고 있는 소비자들의 의견과 국내 언론사의 의견이 큰 차이를 보이는 것일까? 그리고 공정하고 객관적이어야할 언론 매체가 왜 이런 의견을 독자들에게 강요하는 것일까? 온갖 의문이 꼬리를 물고 나타난다. 그리고 한참을 고려하여 생각해 볼 수 있는 여러 가지 원인들은 역시나 나에게 실망감 가득한 슬픈 생각만을 남겨놓는다. 사실이야 무엇이든 모두 독자나 소비자를 우롱하는 저급한 행위일 뿐이다.
 이 번 애플측의 아이폰 4 논란에 관한 대처는 부족한 점도 있지만 대체로 좋은 평가를 주기에 부족함이 없었다고 생각한다. 아무리 세상이 첨단화 되어도 100% 완전무결한 상품이 존재할 수는 없다. 이제껏 써왔던 모든 제품들이 작던 크던 단점을 가지고 있었고 앞으로 많은 시간이 흐른 뒤에도 그 점은 변함이 없을 것이다. 어차피 인간이란 실수를 할수밖에 없는 불완전한 존재이며 그런 인간이 만드는 물건이 완전무결할 수는 없는 법이다. 단점을 따지자면 내가 얼마전까지 사용해왔던 국내 모 기업의 휴대폰은 몇 십장의 논문이 될 수도 있을 것이다. 블루투스를 달아놓고 그 기능을 거의 사용할 수 없게 만든 것은 결함이라 아무도 기사화 하지 않았다. 실재로 이에대한 문의에 대하여 엉뚱한 소리 일색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애플측은 범퍼 케이스를 무상지급하고 이도 마음에 안들면 전액 환불 조치를 공식 발표했다. 이것이 욕먹을 행위인가? 도리어 상당히 책임감있는 대처이며 소비자를 존중하는 조치라고 볼 수 있다. 그리고 아이폰 4를 환불 조치하는 소비자의 비율이 얼마나 될지도 반드시 확인해 보아야할 문제라고 할 수 있다. 개인적인 예측으로는 상당히 적은 수가 될것이라고 생각한다.
 이번에 원래의 아이폰 4 국내 판매 일정이 무산되었을지도 모르며 얼마전 국내 모 기업의 스마트폰이 야심차게 판매를 시작하였다. 그리고 국내 언론 매체들은 아직 국내에 시판도 안된 아이폰 4에 관한 소심한 악의가 느껴지는 기사를 하루에 몇 개씩 쏟아내고 있으며 판매 일정까지 계획되었던 제품이 아직 정부 기관의 전파 관련법 기준의 평가도 받지 못했다. 초등학생들도 쉽게 예측가능한 원인들이 쉽게 떠 오른다.
 과연 소비자인 우리들은 어떻한 판단을 내려야 할까? 정말 우리 소비자들의 시야를 혼란스럽게 흐려 놓는 여러 요소가 많은 이 상황에서 현명하게 소비할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일까? 그리고 객관적 정보를 얻어 현명하고 만족스런 주관적 판단에 의해 소비할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일까? 자본주의 사회에서 더없이 소중한 우리 소비자로서의 선택의 권리를 침해받지 않을 방법은 무엇일까? 아무리 돈이 많고 권력이 많은 기업이라도 소비자의 위에 설 수는 없다. 소비자가 항상 위에 있는 입장이라고는 말 못하겠지만 적어도 절대적으로 동등한 관계이며 어떻한 기업이든 소비자의 권리를 침해할 수 없다. 자신이 가진 소비의 권리를 어디에 행사할 지 결정하는 것은 소비자 자신이다. 언론도 기업도 아니다. 언론은 소비자의 이러한 권리를 보호하기 위해 항상 공정하고 객관적인 위치를 벗어나서는 않될 것이며 기업은 단지 우수한 제품과 당당하고 건전한 경쟁으로써 소비자에게 다가서야 할 것이다. 아직도 우리 나라의 소비 문화를 건강하게 만들어 나가기에는 갈길이 먼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우리 소비자 하나하나가 현명하고 당당한 소비자가 되기 위해 노력한다면 아직 성숙하지 못할지도 모를 우리 나라의 자본주의 문화도 빠른 성장을 보여줄 수 있다. 마지막으로 한 번 더 강조하자면 우리의 돈을 가지고 어떤 상품을 소비하는데 사용할지를 선택하는 것은 우리 소비자 자신이다. 우리 자신이 우수하다고 판단하는 물건에 자신의 금전을 소비할 권리는 그 누구도 침해할 수 없는 불가침의 영역이며 그 누구도 함부로 발들여 놓지 못하게 해야할 것이다. 



 나는 닉네임 미후왕(Mihuwang, 헉! 한자로도 쓸려구 했는데 원숭이 후자가 아직 지원이 안되는 것 같다. 처음 알았음), 블로그(Blog)라는 것을 본격적으로 시작한지는 3달 조금 넘는 기간 밖에 안된 초보 블로거(Blogger)다. 그 전에 블로그에대한 관점이라면 고작해봐야 저급하고 자극적이기만 한 소재로 사람들의 소중한 시간을 빼앗고, 블로거들이 무책임하게 우는 소리나 하는 공간 정도였던 것같다. 좋지 못한 인식이었을 지도 모르지만 혐오스럽고 무책임하게, 한마디로 가볍게 말하는 악플러 = 블로거 라는 공식이 은연중에 있었다. 아마도 블로그에 대한 이런 편견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은 아직도 많으리라 생각된다. 나 역시 그런 사람들중 하나였고 또한 그런 편견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을 자주 봐왔기 때문이다. 그리고 실제로 그런 편견을 갖게 만드는 많은 수의 블로거들을 자주 보아왔고 지금도 가금 본다. 그리고 내 자신이 이런 블로거가 아니기 위해 무단히 노력하는 중이다.

 하지만 우연한 기회로 무책임, 무례, 의미없는 비난, 비방, 자극적인 사진, 무법 등의 부정적인 단어들과는 전혀 무관한 블로그들을 하나 둘 씩 만나게 되었다. 책임감있는 발언, 실제 대면에 못지않는 정중하고 예의바른 태도, 그러면서도 자유롭게 자신의 생각을 말하거나, 자신이 좋아하는 분야를 남들과 공유하고, 유용한 지식을 남에게 전달하며, 감동, 슬픔, 기쁨, 분노등을 블로그 이웃등과 함께 나누는 모습들에 적지 않은 충격을 받게 되었다. 그러면서 블로그라는 매체가 그리 가망없는 모습은 아니라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그리고 나 역시도 이 블로그라는 매체를 이용해 내가 좋아하는 것, 내가 원하는것, 내가 기쁘게 느끼는 것들을 공유해보고싶다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고 조그마한 첫 발을 내딛은지 3달이 넘는 시간이 흘렀다. 짧다면 짧고 길다면 긴 기간동안 많은 것을 느끼고 경험했으며 지금은 블로그라는 이 매체를 정말 좋아하고 즐겁게 즐기는 취미생활로 자리잡기에 이르렀다. 그리고 이 블로그라는 매체를 통해 또 하나의 새로운 만남을 가지게 되었는데 그것이 바로 올포스트(Olpost)와의 만남이다.

 서론이 길어졌는데 옆의 사진이 어느날 뜬금없이 어느날 날아온 올포스트 개설소식을 전달해준 메일 한 통의 내용이다. 처음에는 그냥 수많은 스팸메일 중 하나겠거니 하고 반신반의한 마음으로 올포스트 사전등록 페이지를 들어가보게 되었다. 
 처음으로 나의 관심을 강하게 사로잡았던 것은 현재 한국내 메이저 언론에 대한 불신과 그에대한 올포스트라는 블로거 공간이 현 언론에 대하여 어떤 취지를 가지고 나아갈 것인지에 대한 인터뷰 형식의 영상이었다. 영상 보기 나는 현재 언론에 대한 강한 부정적 견해를 가지고 있는 한 사람이다. 간단히 말해 메이져 TV방송이나 소위 조중동이라 불리는 국내 대표 신문 매체도 절대 읽지 않는다. 그렇다고 내가 영상이라는 매체를 싫어하는 것도 아니며 글을 읽는 것을 싫어해서도 아니다. 도리어 극심한 활자 중독에 영상 중독 증세를 가지고 있는 사람 중 하나이다.

 내가 싫은 것은 언론이란 단어를 사칭한 대규모 사기성 장사나 정치행위다. 물론 그런 일들이 벌어질수 밖에 없을지도 모르지만 적어도 난 보지 않겠다는 생각을 가졌을 뿐이다. 나의 국내 언론에 대한 간단한 생각이 다음에 링크된 포스팅에 간단히 나타나 있다.
 사실 블로그라는 것을 시작하면서 절대 위와 같은 글을 쓰지 않으려고 했다. 무언가를 싫어하는 것은 개인의 자유이지만 그것을 남에게 들어내는 것은 충분한 책임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무언가를 혼자 싫어하는 것은 권리이지만 그것을 남에게 알릴때는 그만한 책임이 따라야 된다는 것이다. 권리와 책임에 관해서는 어렸을적 도덕 교과서에서도 배울 수 있는 기초적인 내용이다. 대체로 비방성 글은 충분한 책임감이 결여 되기 쉽기 때문에 이런 글보다는 내가 좋게 생각하고 높게 평가하는 것들에 대하여, 또는 흥미로워 하는 것들에 대한 이야기들만을 다루고 싶었다. 그리고 최대한 중립적인 자세를 유지하고 싶었다. 어쨌든 결국 현재의 언론에 대한 불신감을 큰 책임감 없이 쓴 나의 다짐에 반하는 가장 부끄러운 포스팅이지만 정말 나의 진심이 담겨있기도 하다. 만약 현재의 언론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면 그 대안이 필요하고 또 올포스트는 그 대안이 되고자 한다. 다른 것은 잘 모르겠지만 그 취지하나로도 올포스트는 충분히 현 언론의 대안책이 될 가능성을 가지고 있으며 보잘것 없지만 나 역시 대안이 되어주고 힘이 되어주고 싶은 심정이다.

 올포스트의 또 다른 취지는 다음 링크에서 볼 수 있다. http://endless9.com/8 바로 블로거의 창작물에 대한 정당한 대가를 지불한다는 것이다. 만약 그것이 내가 글 초반에 언급한 반사회적인 저급한 행위를 하는 블로거라면 모르겠지만, 누구나의 창작물에든 그 가치는 적게든 크게든 반드시 존재하기 마련이다. 그 가치를 돈으로 환산하자면 단 1원 한 푼이라도 말이다. 물론 전업 블로거를 꿈꾸는 블로거들도 많은 것으로 알지만 반대로 많은 블로거들이 자신의 창작물에 대해서 금전적인 큰 기대는 하고있지 않을 지도 모른다. 사실 나만해도 여기 저기 광고도 박아넣고 해 보지만 정말 많은 것을 희생해 가며 전업으로 블로그를 운영해 파워 블로그로 불리는 존재들 이외에는 큰 돈은 되지 않는게 사실이다. 단지 광고를 넣으면서 HTML 태그들을 배우는 재미로 광고를 배치한다고나할까? 물론 지금은 내려버린 구글 에드센스 광고에 아주 짧은 기간이나마 편집증 증상을 어느정도 보인 것은 인정한다. 하지만 그 뿐이며 지금은 좀 더 다른 쪽의 블로그의 재미에 심취해 있다.

 난 글 재주가 없다. 지금도 이 글을 쓰면서 머리털을 몇 번이나 쥐어 뜯는다. 전업 글쟁이들이 받을 스트레스의 정도가 도저히 짐작도 되지 않는다. 왜 이렇게 의미 전달이 효과적으로 되지 않을까? 짜증이 많이 밀려올때도 있다. 하지만 글 쓰는 것을 그만두지 않는다. 왜일까? 돈이 되지도 않는데다 전에는 글은 읽기만하는거지 쓰는게 아니라고 생각한 적도 있는 내가 말이다. 싱겁지만 답은 간단하다. 내가 사실은 글 쓰는 것을 좋아했던 것이다. 그리고 그 사실을 내 블로그가 나에게 알려준 것이다. 글쓰는 재미가 아닌 단지 돈을 위해 키보드를 두드리고 있었다면 이미 이 짜증나는 글쓰기를 그만두었을지도 모르는 일이다. 

 지금은 요 몇일 동안 약 1000~1300명 사이의 방문자가 내 블로그로 찾아와 내가 꼬물꼬물 만들어논 창작물을 보고간다. 처음 시작할 때 고작 20, 30명 되던 방문자 수에 비하면 엄청난 수라고 생각한다. 반면 몇만명 또는 몇십만명씩 하루 방문자수를 기록하는 파워 블로거들에 비하면 상당히 적은 숫자일 수도 있다. 하지만 지금 나에겐 이 눈에 띄는 방문자 수보다 더 중요한 것이 있다. 바로 내 창작물들(보잘것 없지만 ^_^;)을 성의있게 바라봐 주는 사람들의 보이지 않는 수이다. 일 방문자 수는 쉽게 눈에 보이는 만큼 시선을 사로 잡기 쉽지만 이렇게 성의를 가지고 내 창작물들을 대해 주는 사람들의 수치는 눈으로 볼 수 없다. 단지 느낄 뿐이다. 

 일 방문자가 1000명이라면 성의있게 내 창작물들을 바라봐주는 사람은 몇명이나 될까? 내가 볼땐(대표적인 판단 근거는 댓글) 다른 것 다 제외하고 확실한 숫자만 약 3명이라고 생각된다. 고작 3명? 이라는 반응을 보일 수도 있겠지만 나에겐 이 보이지 않는 수치가 보이는 수치 1000명, 10000명보다 중요하게 생각된다. 그리고 이 숫자가 내가 내 창작물을 내보낼때 신경쓰이는 숫자이며 좀 더 좋은 창작을 해 보고 싶게 만드는 원동력이다. 

 또 이야기가 옆으로 길게 늘어져 버렸는데 다시 가운데로 돌아와서 올포스트의 취지를 이야기해 보자. 위에 링크해논 올포스트를 만든 Endless9님의 취지의 골자는 어쩌면 블로그와 돈으로 이해 될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위에 내가 잔뜩 장황하게 써논 것이랑 다른 소리 아니냐는 반응을 보이는 사람들도 있을지 모른다. 하지만 이렇게 이해해 보자. 비록 돈이라는 것을 빌어 이야기했지만 내가 Endless9님의 글에서 강하게 느낀 것은 단지 돈만의 이야기가 아니다. 그 글속에서 한때 블로거였던(지금도?) Endless9님이 말하고 있는 것은 바로 '당신들 블로그 창작물들에게 있는 가치를 적게든 크게든 진지한 자세로 인정해 줄 수 있는 그런 매체를 만들고 싶다.'이다. 물론 돈은 중요하다. 없으면 밥을 먹을 수 없으니까. 하지만 블로그를 통해 내가 얻고 싶은 것은 위에서 말한 3명이다. 그리고 올포스트가 4명째가 되어 주고 또 올포스트를 통해서 5명째를 찾았으면 하는 바램이다. 그리고 충분히 그럴수 있는 취지를 가지고 있다.


 위의 사진에서 보여지듯 올포스트의 첫 화면은 그 취지만큼이나 깔끔하다. 깨끗한 백지 위에 보기에도 상큼한 파랑, 초록, 보라(개인적으로 내가 다 좋아하는 색깔이다.)를 배치한 올포스트이 로고와 블로거들의 포스팅 제목이 적절히 배치되어 깔끔함을 보여준다. 역시 웹사이트는 '깔끔함이 가장 큰 힘을 발휘한다.'라는 생각이 든다. 난 왜 저게 않되는건지.

 그리고 간단한 내 의견을 덧붙이자면 인기없는 마이너한 이야기만을 넣은 분류도 있었으면 하는 바램이다. 소수의 관심만을 받는다고 해서 그 포스팅이 가치 없는 것은 아니다. 그리고 인기 있을만한 포스팅이야 가만히 놔두어도 인기가 있을 확율이 높지만 그렇지 않은 포스팅도 있다. 아주 값어치가 높지만 인기가 없는 포스팅들도 많다. 단지 유행이 아니라는 이유만으로 찬밥신세에 놓여있는 수준 높은 포스팅들을 많이 봐왔다. 그런 포스팅을 하는 사람들이야 인기에 더더욱 관심이 없을 수도 있겠지만 그런 유행과는 관계없지만 수준 높은 포스팅을 찾아보는 일이 그런 포스팅을 보고 싶은 사람들에게 쉽지만은 않은 일이다. 나도 사실 앞으로 하고 싶은 포스팅들이 대부분 대중성이 많이 없다고 생각한다. 아직은 수준도 그냥저냥이지만 말이다. 유행과 관련 없는 포스팅을 많이 하게될 것으로 보이는 블로거 중 하나로서 그리고 유행과 관련없는 주제에 많은 관심을 가지고 있고 그런 나의 취향을 다룬 포스팅들을 만나보고 싶은 블로거로서 이런 카테고리 하나 쯤은 정말 목이 마른 편인다. 물론 이런 카테고리 운영이 얼마나 추상적이고 뜬 구름잡는 듯 하며, 까다롭고 시간에 비에 얻는 것도 적을 지는 운영자 입장에서 역지사지해 보면 충분히 짐작 가능한 사실이긴 하다.

 그리고 올포스트와 블로그의 연동에 있어서 블로거들의 편의를 생각한 기능들이 눈에 띈다. 첫째로 인기 소셜 네트워크(Social Network) 트위터(Twitter)와의 연동에 많은 신경을 쓴 것으로 보인다. 아직 시작이라 약간의 문제는 있어보이지만 안정화에만 잘 성공한다면 블로거들에게 이보다 강한 무기를 쥐어주기도 쉽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나 미후왕 역시 아직 걸음마 단계지만 트위터를 사용중이다. 아직은 더 많은 경험을 해 보아야겠지만 이렇게 단순하면서도 강력한 기능을 가진 웹상의 도구가 전에 없었다는 것을 조금씩 느껴가고 있다. 그러니 이리도 전 세계적으로 많은 이용량을 기록하고 있겠지. 그런의미에서 트위터와 올포스트와의 밀접한 연동기능은 블로거에게 좋은 소식이 아닐 수 없다.

 뿐만아니라 아직까지는 글을 발행하는 것 이외에는 크게 신경써야 할 것이 없는 것으로 보인다. 즉 다른 소위 메타블로그들이 보여주는 귀찮은 행위들에 들이는 시간을 절약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이건 좀 더 지켜봐야할 것으로 보인다. 어쨌든 포스팅 발행 이외에 별 신경 쓸 것이 없다면 이보다 더 좋은 것은 없으리라 본다. 특히 나처럼 단순 반복 작업에 약한 사람에게는 말이다. 

 그리고 하나더 높이 평가해 줄 만한 것이 블로거들을 대하는 올포스트 측의 성의있고 예의를 갖춘 대응 자세다. 옆의 사진은 올포스트측의 발송 메일의 일부를 캡쳐한 내용이다. '이거 뭐 당연한 거 아니야?' 할 수도 있겠지만 꼭 그렇지만도 않은게 인터넷이라는 공간인 것 같다. 여타의 대형 포탈등에서 블로거들을 대하는 태도와는 영 다르다. 글을 너무 많이 읽다보니 생긴 능력일지, 아니면 누구나 다 있는 능력일지는 모르겠지만 약간의 글만 봐도 약간이라도 성의를 가지고 쓴 글인지 아니면 단순히 최소한의 예의만 가지고 대충 쓴 글인지 알 수 있다. 추상적인 얘기일지 모르겠지만 실제로 글을 쓴 성의에 대한 나의 그 판단이 높은 적중률을 가지고 있다고 감히 주장할 수 있다. 어쨌든 믿거나 말거나 그들의 짧은 글들에서 충분한 성의를 느낄 수 있었다. 하기사 저 글에서 성의를 발견하지 못하는 사람은 없으리라본다. 앞에 쓴 나의 능력에 관한 글들이 쓸모 없겠다.

 올포스트는 2010년 5월 17일 시작되었다. 갓난 애기인 것이다. 하지만 상당히 수준 높은 시작으로 보인다. 정말 공감가는 취지와 깔끔한 인터페이스, 유저를 즐겁고 편안한 사용을 배려한 기능, 성의와 예의를 충분히 갖춘 블로거들과의 소통 등 이미 높은 수준의 완성도에 있다고 본다. 비록 예고한 시작 날짜보다는 늦어졌지만 이것은 충분히 이해할 수 있다. 아마도 작은 창작 행위라도 해 본 사람은 어느정도 적게든 크게든 이해할 수 있는 문제라고 생각한다. 약속시간을 지키는 것 만큼 중요한 일도 없겠지만 인간이 원가 만들어내는 기계가 아닌 이상 창작에 있어서 만큼은 성실성을 갖추고서도 때론 시간을 넘기기 마련이다. 어쨌든 시작 만큼은 정말 훌륭하다고 평가할 만 하다. 하지만 아직은 시작일 뿐이다. 가장 좋은 것은 시작과 끝이 모두 좋은 사례겠지만 내가 가장 많이 보아 온 것은 좋은 시작의 나쁜 결말 사례이다. 그나마 좋은 것이 나쁜 시작에도 불구하고 좋은 결말의 사례이겠지만 이 역시도 거의 본 적이 없다. 하지만 이미 좋은 시작을 보여주었으니 좋은 결말을 맺어 시작과 끝이 모두 훌륭한 최고의 사례에 들어갈 가능성의 희망을 충분히 가지고 있는 것은 분명하다. 하지만 시스템의 안정성의 문제나 블로거들에게 중도에 등돌리는 문제등 많은 문제가 발생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아마도 올포스트와 블로거 모두의 책임 있는 행동이 이런 불상사들을 막고 좋은 결말까지 과정을 잘 만들어 갔으면 좋겠다. 아마도 Endless9님의 믹시(Mixsh)에서 쌓은 경험도 크게 한 몫할 것으로 보인다. 

 올포스트의 출범에 발맞추어 블로그에 대한 나의 생각들을 첨가해 올포스트를 간단(?)하게 소개해 보았다. 너무도 길어진 포스팅이라 끝까지 인내심과 성의를 가지고 읽어주시는 분이 이제는 3명도 않될 것 같지만 지금 들인 시간을 후회하지는 않는다. 글을 쓰는 또 하나의 장점이 바로 자신의 생각을 정리 할 수 있다는 것이기 때문이다. 비록 주위에서 이미 자주 들어왔던 이야기지만 몸소 체험에 본 것은 아마도 이 블로그 취미를 시작하면서일 것이다. 정리한게 고작 이정도냐? 하는 반응도 눈에 보이긴 하지만 정말 이 정도도 나 자신에겐 신기할 정도다. 단지 생각만 많은 것과 그것이 정리 된 것과는 엄연히 틀리다. 그런 의미에서 나에게 이런 정리의 시간을 준 계기가된 올포스트에게 깊은 감사를 전하는 바이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올포스트가 멋진 시작에 지지않는 성공적인 과정을 이끌어 나가길 기대해 본다.




 오늘 연합뉴스를 보다가 황당한 기사를 접했습니다. 일본 대학생들이 혼자 식사하는 것을 남들에게 보이기 싫어 화장실에서 혼자 식사하는 일이 빈번히 일어나고있다는 기사였습니다. NHK의 보도에 따르면 한 대학교 교수가 자신의 학생들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를 보도했는데 400명의 학생중 9명이 화장실에서 식사한 적이 있다고 응답했다고 합니다. 공개적인 조사에서 9명이 그렇다고 응답했다면 아마도 더 많은 숫자가 화장실에서 식사한 경험이 있을것이라고 예측하고 있습니다.

 아사히 신문은 2008년 부터 도쿄대등 일부 대학의 화장실에 '화장실에서 식사금지'라는 표지가 붙었다고 화장실 식사 실태를 보도한 적이 있는데 당시 일본 국민들은 아사히 신문측의 기사에 학생들이 장난으로 써붙인 메모에 과잉 반응한 것이 아니냐는 정도의 반응을 보였었다고 합니다. 하지만 계속되는 보도결과와 조사 자료에 일본 여론도 젊은이들의 지나치게 내성적인 성격에 강한 걱정을 표현하고 있다고 합니다. 

 이 이야기는 비단 일본에만 국한된 이야기가 아닙니다. 제가 대학을 다닐 때만해도 우리과 후배들에게서 자주 이런 성향을 발견하곤 했습니다. 화장실에서까지 식사를 하는지는 모르겠지만 혼자 식사하는 것이 상당히 부끄럽고 수치스러운 것으로 받아들이는 후배들이 많았습니다. 혼자 밥을 먹느니 굶는 학생들도 많이 보았구요. 그 문제에 관해서 제가 자세히 물어 본 적도 있습니다. 그에 대한 대답은 대게 '혼자 밥 먹으면 남들이 모두 자기를 쳐다보며 친구도 없는 왕따라고 비웃는 것 같다.'는 과대망상이나 피해망상 같은 대답을 당연한 듯이 하곤 하더군요.

 원래 정신적 성장과 함께 유아시기의 지나친 의존성은 점점 사라지고 독립성이 그 자리를 차지하는 것이 정상이라고 생각합니다. 누군가가 항상 옆에 있지 않으면 자기 자신의 정체성에 자신감이 사라진다는 것은 지나친 의존성이 아니겠습니까? 남눈을 지나치게 의식하는 것도 강한 애정 결핍적 성향이 만들어내는 것일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리고 이 것 모두 정신적 성장과 함께 스스로 이겨나가야 할 문제겠지요.

 과연 혼자 밥먹는 사람들이 모두 사회성이 부족하거나 친구가 없어서 혼자 밥을 먹고 있는 것일까요? 여러 사람들과 어울려 식사를 한다는 것은 즐거운 일입니다. 하지만 때론 혼자 식사를 하며 사색에 잠긴다든지 좀더 식사에 집중하는 것도 좋은 일일것입니다. 경우에 따라서는 친구들과 즐겁게 어울려 식사를 할 수도 있고 또, 혼자 식사하게 될때는 그 시간을 소중히 보내면 그만일 것입니다. 그리고 때론 불편한 사람들과 식사하는것 보다 마음 편히 혼자 먹는것이 나은 경우도 있습니다. 물론 경우에 따라 혼자 식사하는 모습을 보며 좋지 않은 감정을 갖는 사람들도 있겠지만 문제는 그 사람들에게 있는 것입니다. 또 그런 사람들이 혼자 식사하게 되었을때 굶거나 화장실을 찾을것입니다. 

 제가 대학을 다녔을 때 이후로 많은 시간이 흘렀습니다. 아마도 혼자 식사하는 것을 수치스럽게 생각한다거나 더 심하게는 화장실에서 식사하는 후배들이 늘었을까봐 조금 걱정이 되긴 합니다. 혹시라도 혼자 밥먹는 것이 두렵다거나 부끄러운 분이 보신다면 혼자 밥먹게 되었을 때 굶지도, 화장실에 웅크리고 식사하지도 않고 당당히 그 시간을 즐겼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굶는 것도 웅크리고 식사하는 것도 건강에 좋지 않습니다. 물론 친구들과 어울려 즐겁게 대화하는 식사도 소중히 하시고요. 약간 주제 넘는 제 생각이었습니다. ^_^; 혼자 밥먹을 땐 당당히 혼자 밥먹읍시다.

 요 몇 일 사이 불쌍한 여중생을 성폭행, 살해한 '최악의 생물'이 붙잡혀 사회적으로 많은 논란을 낳고 있다. 아직 너무도 어린 나이에 끔찍한 경험(남자이기에 이해하는데 한계는 있지만)을 마지막으로 인생을 마감한 너무도 불쌍한 여중생의 죽음을 가슴 깊이 애도한다. 내 근처에도 아직 어린아이의 천진한 웃음을 지으면서도 어른스럽게 보이려고 이래 저래 노력하는 여중생들을 얼굴을 자주 보곤한다. 이런 어린 생명을 무참히 짖밟아 버린 '최악의 생물'이 우리 사회에 존재한다는 것은 정말 슬픈 일이 아닐 수 없다. 그나마 불행중 다행인 것은 이 생물이 잡혀서 죄값을 치루게 되어서 다행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문제는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좋은 소리도 여러 번 들으면 마구 짜증이 나는 법이다. 요즘 TV를 잘 안보는 나도 성폭행이라는 단어를 하루에 평균 5번 이상 듣는 것 같다. 식당을 가든 길거리를 돌아다니든 그 놈의 '성폭행'이라는 단어는 하루도 빼 놓지 않고 내 귀와 정신을 더럽히고 있다. 가게에서 물건을 살때 아직 멋 모르는 아이들이 TV매스컴에서 한 기사에서도 몇 번씩이나 무분별하게 내 뱉어데는 '성폭행'이라는 단어가 몇몇 과자, 사탕 사러온 천진한 아이들의 귀와 마음 조차도 더럽히는 꼴을 보고있자니 한 숨만 나온다. 이런 '성폭행'이라는 더러운 단어를 내 의지완 관계없이 하루에 몇 번씩을 들어야 하게 만든 일차적 죄는 물론 앞에서 언급한 이번에 남자 망신을 제대로 시킨 '최악의 생물'에게 있겠다. 그러나 우리가 쉽게 간과하고 넘어갈 수 있는 죄인이 하나 더 있다. 바로 싸구려 매스컴 정신에 얽매인 여러 방송 언론 매체들이다. 과연 이들이 이 '최악의 생물'을 가지고 현재 벌이고 있는 이 일련의 쇼들이 정말 국민의 알 권리를 위하여 열심히 매진하고 있는 것일까? 아니면 무슨 또 다른 목적을 가진 언론 플레이 인가? 나는 절대적으로 회의를 느낀다. 이미 국민 누구나 이 '최악의 생물'이 저지른 일을 알고 죄값을 치룰 것을 알고 있다. TV보는 것을 몹시 싫어하는 나조차 이미 귀에 인이 박힐 정도로 알고있다. 지금 매스컴이 '성폭행', '성폭행' 노래를 부르며 하고 있는 일들은 고작해봐야 언론사의 이익을 위한 국민의 관심 끌기일 뿐이다. 그리고 이런 매스컴의 횡포때문에 그 듣기싫은 더러운 단어를 몇 번 씩 들으며 마음과 귀를 더럽혀야 하는 것은 국민들일 뿐이다. 한 불쌍한 여중생의 죽음을, 그리고 정말 불쌍하다고 밖에 말할 수 없는, 최소한 인간이라면 저지르지 말았어야할 죄를 지은 한 남자를 자극 적인 단어로 눈끌기 기사화하여 시청률, 구독률등을 한 탕 해 자기 잇속이나 채워 보자는 싸구려 매스컴 정신으로 같은 기사를 몇일 씩 내보내는 것도 큰 죄가 아닐 수 없다.
 왠 말도 않되는 이 범죄자 추종 팬싸이트까지 생겼고 이를 보고 '죽은 여중생을 두 번 죽이는 행위.'라고들 한다. 언론 매체들의 이러한 행동들도 마찬가지이다. 죄인은 죄값을 치루고 불쌍하게 죽은 여중생을 애도하며, 그 가족들의 상처가 제발 치유되기를 바래야할 이 때에 계속되는 '더러운 성폭행'이라는 단어를 내 세운 기사들로 잇속을 차리고 있는 행위야말로 안타깝게 죽은 소녀를 두 번 죽이는 것이고 가족의 마음을 헤집어 파내며 국민의 귀와 마음을 더럽히는 횡포이다. 이 자신의 예쁜 딸의 죽음과 관련된 '성폭행'이라는 더럼고도 자극적인 단어를 하루에도 몇 번씩 들어야할 소녀의 부모 심정을 생각해 보라. 당신에게 성폭행 당하고 죽은 딸이 있는데 듣기 싫어도 매일같이 성폭행이라는 단어를 들어야 한다고 생각해 봐라! 국민의 알 권리는 이미 충족되었으니 자제를 촉구할 뿐이다. 제발 국민의 알권리를 위해서라는 웃기는 변명일랑 집어치워줬으면 좋겠다. 하루라도 빨리 죽은 여중생의 가족들이 쉽지않을 새 시작을 할 수 있도록 빌어야 할 것이고 그럴려면 가장 먼저 필요한 것이 매스컴의 이 더러운 행위의 중단이다. 제발 좀 그만 해라!! 그리고 나 역시 이런 성폭행이란 단어를 써가며 이런 글을 쓸 수 밖에 없는 현실이 너무 안타깝다.

마지막으로 나는 아직 내세는 잘 모르겠지만 
 내세가 있다면 죽은 소녀의 영혼이 모든 것을 잊고 편히 쉬기만을 바래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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