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전명작 ‘오디세이(Odyssey)’는 영웅 오디세우스가 고향으로 돌아가는 동안 겪은 10년간의 모험을 담은 서사시다. 오디세우스는 식인족, 요정의 마술, 풍랑 등의 자연재해, 외눈박이 거인, 마귀, 난파, 표류 등 온갖 고난과 맞닥트리지만 결국 귀향에 성공한다.
이 때문에 오디세이는 ‘경험이 가득한 긴 여정’을 뜻하는 단어로 자리 잡았다. 그리고 2014년 1월 5일, 아르헨티나 로사리오에서 현대판 오디세우스들의 오디세이가 막을 올렸다. 바로 제35회 다카르 랠리다. 주최 측이 정한 이번 테마는 다름아닌 ‘THE ODYSSEY’다.
지상 최고의 오디세이
지구 상에서 가장 혹독한 레이스로 평가 받는 다카르 랠리(Dakar Rally)는 한 남자의 무모한 도전이 계기가 되어 탄생했다. 1978년, 프랑스 출신 모험가인 티에리 사빈은 모터사이클을 타고 아프리카 사막으로 떠났다. 사막 횡단 후 프랑스 니스로 돌아오는 코스의 모험 계획을 실천하기 위해서였다. 하지만 사막 한복판에서 조난을 당해 실패했다.
구사일생 끝에 돌아온 그는 자신의 실패에서 영감을 얻어 1년 후인 1979년, 프랑스 파리에서 출발해 사하라 사막을 거쳐 세네갈의 다카르까지 달리는 ‘파리-다카르 랠리’를 개최했다. 이후 다카르 랠리는 매해 1월마다 열리며 전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랠리로 자리매김했다. 유럽과 아프리카 대륙을 가로지르는 9000km 이상의 코스는 다카르 랠리만의 전통이었다.
혹독하고 기나긴 여정 곳곳에 도사린 위험 때문에 사망자와 부상자도 끊이지 않았다. ‘모험’과 ‘위험’은 언제나 맞닿아 있으니까. 심지어 창시자인 티에리 사빈마저도 1986년에 랠리 코스를 헬리콥터로 둘러보다가 추락 사고로 사망했다. 매년 사건 사고가 끊이지 않아 ‘죽음의 랠리’라는 오명까지 얻었다. 인명 경시의 이유로 다카르 랠리의 폐지를 촉구하는 이도 많다. 교황이 이런 위험한 경기는 그만하라며 개최를 반대했던 적이 있을 정도니 오죽할까. 하지만 우승을 한들 상금도 없고 참가비는 한화 2천 만원(2014년 1월 기준)에 육박하는데, 모험을 갈구하며 기꺼이 참가하는 이가 줄을 잇는다. 완주를 하는 것만으로도 대단한 명예다.
구설수에 오르내리던 다카르랠리는 2008년 아프리카에서 발발한 테러 위협 문제로 경기를 한 해 건너뛰었다. 그리고 안전상의 이유 때문에 2009년부터 개최지를 남미로 변경했다. 이에 혹자는 “이제 다카르가 코스에 없으니 다카르 랠리라고 부를 까닭이 없지 않느냐”고 딴지를 걸기도 한다. 그러나 ‘다카르’라는 지명이 모험의 종착점을 상징하기 때문에, 더 이상 코스에 다카르가 없지만 여전히 다카르 랠리라는 이름을 유지하고 있다. 붕어빵에 진짜 붕어가 안 들어 있어도 우리 모두 그걸 붕어빵이라고 부르듯이.
고농축의 모험, 스페셜 스테이지
현재 다카르랠리의 출전 종목은 모터사이클, 쿼드(ATV), 자동차, 트럭이다(자동차는 차량 개조 허용 정도에 따라 세 부문으로 나뉜다). 올해는 모터사이클 174대, 쿼드 40대, 자동차 147대, 트럭 70대 등 총 431대의 차량이 참가했다. 모든 출전 차량은 사막 한복판에서 길을 잃지 않기 위해 위성항법장치(GPS)를 반드시 설치해야 한다.
경기 진행 방식은 서킷에서 진행되는 레이스와 다르다. 참가 차량이 한꺼번에 출발하지 않고, 쉼없이 계속 달리지도 않는다. 코스는 각 스테이지 별로 나뉘어 있다. 모든 차량은 종목별로 약 1분의 시차를 두고 각자 출발한다. 스테이지 별로 각 차량의 주행 시간 기록을 재서 합산, 누적된 총 완주 소요 시간 기록이 가장 짧은 순으로 승자를 정한다. 매일 그 날의 스테이지가 끝나면 휴식과 정비의 시간을 가진다. 경기 시작 7일째 날은 아예 스테이지가 없는 휴식일이다.
스테이지는 ‘스페셜 스테이지’와 ‘리에종’으로 나뉜다. 스페셜 스테이지는 순위에 반영할 주행 시간 기록을 재는 구간이고, 리에종은 정해진 시간 안에 통과하면 되는 연결구간이다. 주최 측은 코스 중 지형이 유독 험난한 곳은 스페셜 스테이지로, 달리기 무난한 곳은 리에종 구간으로 배치한다. 하지만 그 어떤 참가자라도 리에종이라고 방심할 수는 없다. 시간 내에 완주하지 못하면 벌점 내지는 탈락 처리되기 때문이다.
이뿐만 아니라 스페셜 스테이지의 규정이 구간에 따라 변칙 적용되기도 한다. 어떤 스테이지에서는 GPS를 쓸 수 없고, 또 어떤 스테이지에서는 종료 후 정비 팀의 지원이 금지되어 선수가 스스로 정비를 해야 한다. 그래서 참가자는 극한 상황에서 스스로 헤쳐나갈 모든 방법을 동원해야 한다. 피도 눈물도 없는 종합 서바이벌 게임이나 다름없다.
반전 없는 결과, KTM 마르코 코마의 우승
올해의 참가자들은 아르헨티나의 로사리오에서 출발해서 볼리비아를 거쳐 칠레의 발파라지오까지 총 9374km 코스를 달렸다. 완주 시 하루 평균 주행거리는 721km, 기계나 사람이나 감당하기 힘든 거리다. 매일 1개씩 총 13개의 스테이지가 펼쳐졌다. 모래 먼지 휘날리는 사막, 강, 협곡, 험준한 안데스 산맥, 볼리비아 최고의 절경으로 꼽히는 유우니 소금사막, 선인장이 가득한 언덕, 해안지대 등 인간이 경험할 수 있는 모든 지형이 등장해 모험의 수준을 극한까지 끌어올렸다.
2014 다카르 랠리의 코스
개막 전, 모터사이클 부문의 관전 포인트는 KTM 레드불 팩토리팀과 혼다 HRC 팩토리팀의 대결로 예상되었다. KTM 레드불 팩토리팀은 10년이 넘도록 우승자를 연속 배출하며 명실공히 최고의 팀으로 뿌리내린 터였다. 우수한 기량에도 불구하고 작년에 부상을 입어 불참한 마르코 코마, 안정적인 실력으로 주목 받는 호벤 파리아가 대표선수였다. 혼다 HRC 팩토리팀은 이에 맞서기 위해 수퍼루키인 호안 바레다와 샘 선더랜드, 그리고 베테랑으로 손꼽히는 헬더 로드리게스를 내세웠다. 야마하 팩토리팀은 작년도를 포함하여 다카르 랠리에서 총 5번이나 우승한 시릴 디프리를 영입해 우승을 노렸다.
2014 다카르 랠리의 모터사이클 부문 우승자, 마르코 코마(KTM)
하지만 예상은 빗나갔다. 경기가 시작한 이래 ‘박빙’이나 ‘반전’이라 부를 만한 상황은 없었다. 경기 5일째부터 줄곧 마르코 코마(KTM)의 독주였기 때문이다. 지난 18일, 마지막인 스테이지13을 마친 마크 코마는 총 54시간 50분 53초의 기록으로 최종 우승자가 되었다. 2위 역시 KTM의 호르디 빌라돔스가 차지했다. 1위와 2위의 격차는 1시간 50분 27초였다. 이로써 KTM 레드불 팩토리팀의 연패 신화는 다시금 굳건해졌다.
야마하는 3, 4위를 배출했다. 4위인 시릴 디프리는 중반부부터 뒷심을 발휘하며 선전했다. 혼다 HRC는 최종순위 10위권 안에서 5, 7, 8위를 배출하는 것에 그쳤다. 1위부터 10위까지의 최종 순위는 다음과 같다.
1. Marc Coma, ESP (KTM) 54:50:53
2. Jordi Viladoms, ESP (KTM) 56:43:20
3. Oliver Pain, FRA (Yamaha) 56:50:56
4. Cyril Despres, FRA (Yamaha) 56:56:31
5. Helder Rodrigues, PRT (Honda) 57:02:02
6. Jakub Przygonski, POL (KTM) 57:22:39
7. Joan Barreda, ESP (Honda) 57:44:54
8. Daniel Gouet, CHL (Honda) 58:01:27
9. Stefan Svitko, SVK (KTM) 58:41:03
10. David Casteu, FRA (KTM) 58:49:09
한편 올해는 1월 5일부터 18일까지 약 보름간의 경기 기간 중 3명의 사망자가 발생했다. 모터사이클 부문 참가자인 에릭 팔랑트(50)가 스테이지5 구간에서 숨진 채 발견되었고, 취재기자 한 명과 관람객 한 명이 사고로 숨졌다. 또한, 총 431대의 참가차량 중 완주에 실패한 차량은 무려 226대였다. 모터사이클 종목에서는 총 174대의 참가차량 중 절반이 넘는 96대가 기권이나 탈락으로 중도 하차했다.
올해의 완주율은 약 47%이다. 시상대에 오르지는 못했으나, 종착점까지 도사린 숱한 위험을 무릅쓰고 완주에 성공한 선수들 역시 박수를 받을 만하다. 그들 각자에게 인생 최고의 도전이었을 오디세이에서 살아 돌아왔으니 말이다. 남미의 광활한 대자연을 무대로 한 현대판 오디세우스들의 모험, 다카르 랠리는 내년 초에 다시 펼쳐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