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좌:최초의 경도상 수상자 존 해리슨(John Harrison, 1693~1776), 우: 존 해리슨의 크로노미터(Chronometer)>


 경도상(經度賞, Longitude Prize)의 유래는 300년 전 대항해시대라 불리던 1914년 영국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영구국의회에 의해 '경도법'이 제정되는데 해상에서 정확한 경도 측정을 개발한 이에게 2만 파운드(현재 100만 파운드 상당의 금액, 한화 약 17억원 상당)의 상금을 수여한다는 내용의 법령이었다. 대항해시대 당시 해양에서의 정확한 위치 파악은 무엇보다 중요한 지상 과제였다. 위도는 태양의 위치 파악으로 간단히 알 수 있었지만 경도만큼은 쉽지 않은 난제였다. 정확한 경도 파악이 불가능하던 당시에는 해상에서 조난 당하는 선박 사고가 끊이질 않았으며 이 사고들은 심각한 인명, 재산 피해로 이어졌다. 당시 정확한 경도 파악은 인류의 가장 주요한 과제중 하나였던 것이다. 결국 존 해리슨이 크로노미터를 개발하면서 해상에서도 정확한 경도 파악이 가능해졌다. 하지만 심사측의 오판으로 인해 존 해리슨이 크로노미터를 완성한 것은 66세였지만 상금을 완전히 수령한 것은 그의 나이 72세 때였다. 


 300년의 세월이 지난 2014년 영국에서 경도위원회가 다시 꾸려졌다. 대항해시대 당시 인류의 최대 난제가 정확한 경도 파악이었지만 이미 이 난제가 해결되고 오랜 시간이 지난 지금 인류가 풀어야할 새로운 6개의 난제에 1,000파운드의 상금을 걸었다. 아래는 6개의 난제 후보다.


1. 비행 : 환경을 해치지 않고 비행하기

2. 식량 : 인류 모두에게 지속적이고 안정적으로 영양이 보충되는 식량확보

3. 치매 : 치매 환자들이 오래도록 독립적으로 생활할 수 있는 방법

4. 신체마비 : 마비된 신체를 가진 이들의 신경 회복

5. 물: 지구 어디에서나 안전한 식수 확보

6. 항생제 : 항생제 내성 극복


 6개의 난제 모두 인류 발전에 중요한 지상과제로 보인다. 이 문제들을 해결할 방법을 찾아낸다면 1,000파운드, 한화 약 172억에 달하는 금액 이상의 가치를 가지고 있을 것이다. 과거 경도상을 수상한 존 해리슨이 상금 이외에도 자신이 해결한 난제에 대한 큰 자부심을 가지고 있었듯이 이 문제들을 해결하게될 선구자 역시 인류에 큰 공헌을 한 만큼의 자부심을 가져도 무방할 것 같다. 2020년 수상 결과가 발표될 것으로 보인다. 인류 발전에 큰 공헌을 하게될 이들의 수상을 기대해 본다.



 다카르 랠리는 인류가 행하는 가장 혹독한 레이싱이다. 실제로 거의 매년 부상자 뿐 아니라 사망자까지 발생하는 랠리이기도 하다. 하지만 과거 몇년을 제외하고는 거의 매년 행해지는 경주이며 항상 참가자의 수도 어마어마하다. 자신의 한계에 도전해보고자하는 도전 정신으로 똘똘 뭉친 모험가들이 그만큼 많이 있다는 증거다. 나도 언젠가 이 경주에 참가해 보는 상상을 해 보며 이들 불굴의 모험가들에게 박수를 보내본다. 아래는 2014년 다카르 랠리에 관한 바이커즈랩의 기사다. 올해는 1~10위까지는 혼다, 야마하, KTM이 싹쓸이했다!


2014 다카르 랠리
현대판 오디세우스들의 모험

 

고전명작 ‘오디세이(Odyssey)’는 영웅 오디세우스가 고향으로 돌아가는 동안 겪은 10년간의 모험을 담은 서사시다. 오디세우스는 식인족, 요정의 마술, 풍랑 등의 자연재해, 외눈박이 거인, 마귀, 난파, 표류 등 온갖 고난과 맞닥트리지만 결국 귀향에 성공한다.

 

이 때문에 오디세이는 ‘경험이 가득한 긴 여정’을 뜻하는 단어로 자리 잡았다. 그리고 2014년 1월 5일, 아르헨티나 로사리오에서 현대판 오디세우스들의 오디세이가 막을 올렸다. 바로 제35회 다카르 랠리다. 주최 측이 정한 이번 테마는 다름아닌 ‘THE ODYSSEY’다. 

 

 

 

지상 최고의 오디세이

 

지구 상에서 가장 혹독한 레이스로 평가 받는 다카르 랠리(Dakar Rally)는 한 남자의 무모한 도전이 계기가 되어 탄생했다. 1978년, 프랑스 출신 모험가인 티에리 사빈은 모터사이클을 타고 아프리카 사막으로 떠났다. 사막 횡단 후 프랑스 니스로 돌아오는 코스의 모험 계획을 실천하기 위해서였다. 하지만 사막 한복판에서 조난을 당해 실패했다.

 

 

 

구사일생 끝에 돌아온 그는 자신의 실패에서 영감을 얻어 1년 후인 1979년, 프랑스 파리에서 출발해 사하라 사막을 거쳐 세네갈의 다카르까지 달리는 ‘파리-다카르 랠리’를 개최했다. 이후 다카르 랠리는 매해 1월마다 열리며 전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랠리로 자리매김했다. 유럽과 아프리카 대륙을 가로지르는 9000km 이상의 코스는 다카르 랠리만의 전통이었다.

 

 

혹독하고 기나긴 여정 곳곳에 도사린 위험 때문에 사망자와 부상자도 끊이지 않았다. ‘모험’과 ‘위험’은 언제나 맞닿아 있으니까. 심지어 창시자인 티에리 사빈마저도 1986년에 랠리 코스를 헬리콥터로 둘러보다가 추락 사고로 사망했다. 매년 사건 사고가 끊이지 않아 ‘죽음의 랠리’라는 오명까지 얻었다. 인명 경시의 이유로 다카르 랠리의 폐지를 촉구하는 이도 많다. 교황이 이런 위험한 경기는 그만하라며 개최를 반대했던 적이 있을 정도니 오죽할까. 하지만 우승을 한들 상금도 없고 참가비는 한화 2천 만원(2014년 1월 기준)에 육박하는데, 모험을 갈구하며 기꺼이 참가하는 이가 줄을 잇는다. 완주를 하는 것만으로도 대단한 명예다.

 

 

구설수에 오르내리던 다카르랠리는 2008년 아프리카에서 발발한 테러 위협 문제로 경기를 한 해 건너뛰었다. 그리고 안전상의 이유 때문에 2009년부터 개최지를 남미로 변경했다. 이에 혹자는 “이제 다카르가 코스에 없으니 다카르 랠리라고 부를 까닭이 없지 않느냐”고 딴지를 걸기도 한다. 그러나 ‘다카르’라는 지명이 모험의 종착점을 상징하기 때문에, 더 이상 코스에 다카르가 없지만 여전히 다카르 랠리라는 이름을 유지하고 있다. 붕어빵에 진짜 붕어가 안 들어 있어도 우리 모두 그걸 붕어빵이라고 부르듯이.

 

 

고농축의 모험, 스페셜 스테이지

 

 

현재 다카르랠리의 출전 종목은 모터사이클, 쿼드(ATV), 자동차, 트럭이다(자동차는 차량 개조 허용 정도에 따라 세 부문으로 나뉜다). 올해는 모터사이클 174대, 쿼드 40대, 자동차 147대, 트럭 70대 등 총 431대의 차량이 참가했다. 모든 출전 차량은 사막 한복판에서 길을 잃지 않기 위해 위성항법장치(GPS)를 반드시 설치해야 한다.

 

 

경기 진행 방식은 서킷에서 진행되는 레이스와 다르다. 참가 차량이 한꺼번에 출발하지 않고, 쉼없이 계속 달리지도 않는다. 코스는 각 스테이지 별로 나뉘어 있다. 모든 차량은 종목별로 약 1분의 시차를 두고 각자 출발한다. 스테이지 별로 각 차량의 주행 시간 기록을 재서 합산, 누적된 총 완주 소요 시간 기록이 가장 짧은 순으로 승자를 정한다. 매일 그 날의 스테이지가 끝나면 휴식과 정비의 시간을 가진다. 경기 시작 7일째 날은 아예 스테이지가 없는 휴식일이다.

 

스테이지는 ‘스페셜 스테이지’와 ‘리에종’으로 나뉜다. 스페셜 스테이지는 순위에 반영할 주행 시간 기록을 재는 구간이고, 리에종은 정해진 시간 안에 통과하면 되는 연결구간이다. 주최 측은 코스 중 지형이 유독 험난한 곳은 스페셜 스테이지로, 달리기 무난한 곳은 리에종 구간으로 배치한다. 하지만 그 어떤 참가자라도 리에종이라고 방심할 수는 없다. 시간 내에 완주하지 못하면 벌점 내지는 탈락 처리되기 때문이다.

 

 

이뿐만 아니라 스페셜 스테이지의 규정이 구간에 따라 변칙 적용되기도 한다. 어떤 스테이지에서는 GPS를 쓸 수 없고, 또 어떤 스테이지에서는 종료 후 정비 팀의 지원이 금지되어 선수가 스스로 정비를 해야 한다. 그래서 참가자는 극한 상황에서 스스로 헤쳐나갈 모든 방법을 동원해야 한다. 피도 눈물도 없는 종합 서바이벌 게임이나 다름없다.   

 

반전 없는 결과, KTM 마르코 코마의 우승

 

올해의 참가자들은 아르헨티나의 로사리오에서 출발해서 볼리비아를 거쳐 칠레의 발파라지오까지 총 9374km 코스를 달렸다. 완주 시 하루 평균 주행거리는 721km, 기계나 사람이나 감당하기 힘든 거리다. 매일 1개씩 총 13개의 스테이지가 펼쳐졌다. 모래 먼지 휘날리는 사막, 강, 협곡, 험준한 안데스 산맥, 볼리비아 최고의 절경으로 꼽히는 유우니 소금사막, 선인장이 가득한 언덕, 해안지대 등 인간이 경험할 수 있는 모든 지형이 등장해 모험의 수준을 극한까지 끌어올렸다.

 

                                                           2014 다카르 랠리의 코스
 

개막 전, 모터사이클 부문의 관전 포인트는 KTM 레드불 팩토리팀과 혼다 HRC 팩토리팀의 대결로 예상되었다. KTM 레드불 팩토리팀은 10년이 넘도록 우승자를 연속 배출하며 명실공히 최고의 팀으로 뿌리내린 터였다. 우수한 기량에도 불구하고 작년에 부상을 입어 불참한 마르코 코마, 안정적인 실력으로 주목 받는 호벤 파리아가 대표선수였다. 혼다 HRC 팩토리팀은 이에 맞서기 위해 수퍼루키인 호안 바레다와 샘 선더랜드, 그리고 베테랑으로 손꼽히는 헬더 로드리게스를 내세웠다. 야마하 팩토리팀은 작년도를 포함하여 다카르 랠리에서 총 5번이나 우승한 시릴 디프리를 영입해 우승을 노렸다.

 

                          2014 다카르 랠리의 모터사이클 부문 우승자, 마르코 코마(KTM) 

 

하지만 예상은 빗나갔다. 경기가 시작한 이래 ‘박빙’이나 ‘반전’이라 부를 만한 상황은 없었다. 경기 5일째부터 줄곧 마르코 코마(KTM)의 독주였기 때문이다. 지난 18일, 마지막인 스테이지13을 마친 마크 코마는 총 54시간 50분 53초의 기록으로 최종 우승자가 되었다. 2위 역시 KTM의 호르디 빌라돔스가 차지했다. 1위와 2위의 격차는 1시간 50분 27초였다. 이로써 KTM 레드불 팩토리팀의 연패 신화는 다시금 굳건해졌다.

 


야마하는 3, 4위를 배출했다. 4위인 시릴 디프리는 중반부부터 뒷심을 발휘하며 선전했다. 혼다 HRC는 최종순위 10위권 안에서 5, 7, 8위를 배출하는 것에 그쳤다. 1위부터 10위까지의 최종 순위는 다음과 같다.

 

1. Marc Coma, ESP (KTM) 54:50:53 
2. Jordi Viladoms, ESP (KTM) 56:43:20 
3. Oliver Pain, FRA (Yamaha) 56:50:56 
4. Cyril Despres, FRA (Yamaha) 56:56:31 
5. Helder Rodrigues, PRT (Honda) 57:02:02 
6. Jakub Przygonski, POL (KTM) 57:22:39 
7. Joan Barreda, ESP (Honda) 57:44:54 
8. Daniel Gouet, CHL (Honda) 58:01:27 
9. Stefan Svitko, SVK (KTM) 58:41:03 
10. David Casteu, FRA (KTM) 58:49:09 

 

 

한편 올해는 1월 5일부터 18일까지 약 보름간의 경기 기간 중 3명의 사망자가 발생했다. 모터사이클 부문 참가자인 에릭 팔랑트(50)가 스테이지5 구간에서 숨진 채 발견되었고, 취재기자 한 명과 관람객 한 명이 사고로 숨졌다. 또한, 총 431대의 참가차량 중 완주에 실패한 차량은 무려 226대였다. 모터사이클 종목에서는 총 174대의 참가차량 중 절반이 넘는 96대가 기권이나 탈락으로 중도 하차했다.

 

 

올해의 완주율은 약 47%이다. 시상대에 오르지는 못했으나, 종착점까지 도사린 숱한 위험을 무릅쓰고 완주에 성공한 선수들 역시 박수를 받을 만하다. 그들 각자에게 인생 최고의 도전이었을 오디세이에서 살아 돌아왔으니 말이다. 남미의 광활한 대자연을 무대로 한 현대판 오디세우스들의 모험, 다카르 랠리는 내년 초에 다시 펼쳐진다. 

 


 

 

 

저작자 : http://www.bikerslab.com





 오스트리아 출신의 스카이다이빙 선수 펠릭스 바움가르트너가 3만 9045Km 상공, 성층권으로부터의 스카이다이빙에 성공했다. 미국 현지 시간 14일 뉴멕시코주 동부 로스웰에서 헬륨 열기구를 타고 성층권까지 약 2시간 30분동안 비행해 목표 고도에 도달한 바움가르트너는 39Km 높이 스카이다이빙해 자유낙하를 시작했다. 낙하 시작 후 고작 4분 19초만에 음속(시속 1137Km)에 도달하였으며 스카이다이빙으로는 최초로 음속을 돌파한 것으로 기록되었다. 바움가르트너는 상공 1.5Km 지점에서 무사히 낙하산을 펼치고 뉴멕시코주의 사막위에 안전히 착륙했다.


 성층권은 지표보다 공기의 밀도가 극히 적다. 지표 기압의 1/100에 못 믿치는 공기 밀도가 어쩌면 맨몸으로 음속 돌파를 가능하게 해 주었다고 할 수 있다. 물체가 정상 기압하에서 음속을 돌파하는 순간 강렬한 공기 저항으로 인해 일명 소닉붐이 발생하는데 이 순간 속도가 소리의 공기중 전달 속도를 넘어서는 순간이기 때문에 음속이라는 이름이 붙게 되었다. 이런 소닉붐을 일으킬 정도의 공기압을 인간이 견딜 수 있을까? 성층권에서는 공기 밀도가 극히 낮아 소닉붐을 발생시킬 정도로 공기 저항이 없었을 것이다. 하지만 역시 정말 견디기 힘은 공기 저항을 경험했을 것이 분명하다. 이륜자동차로 160Km/h의 속도만 내도 공기 저항이 얼마나 몸에 큰 부하를 주는지 경험해 볼 수 있다. 이륜자동차로 속도를 즐기며, 스즈키의 하야부사로 300Km/h 이상의 속도도 경험해 보았지만 과연 성층권에서 자유낙하 할 때의 공기압을 내가 견뎌낼 수 있을까?


 성층권은 공기압이 극히 낮기 때문에 몸에 잠수병과 비슷한 현상이 일어날 수 있다. 때문에 바움가르트너는 우주비행사들이 입는 우주복과 흡사한 여압복을 착용했다. 이 여압복은 뛰어내릴 당시 영하23도 낙하순간 최저 영하56도의 극한의 추위도 견뎌낼 수 있었다. 이러한 감압에 의한 잠수병과 극한의 추위는 충분히 사람의 목숨을 빼앗을 수 있는 위험한 조건이라고 할 수 있다.


 바움가르트는 최고 높이 스카이다이빙, 맨몸(?)으로 최초로 음속을 돌파한 인간, 기구 도달 높이 최고도, 3가지 부문에서 신기록을 세웠다. 물론 여압복의 도움을 받았긴 하지만 정말 놀라운 정신력이 일군 기록이라고 할 수 있겠다. 끝까지 정신을 잃지 않고 적정 높이에 낙하산을 작동시킨 바움가르트너의 놀라운 정신력에 박수를 보내는바이다. 바움가르트너 정도는 불가능하겠지만 언젠가 스카이다이빙에 꼭 한 번 도전해 보는 것도 나의 꿈 중 하나이다.


 아래는 이번 점프, 일명 레드불 스트라토스를 후원한 음료 회사 레드불(Redbull)의 점프 동영상이다. 해당 사이트도 링크해 좋으니 관심있는 분들은 한 번 방문해 보시길......


레드불 스트라토스 구경가기






 중국이 개방된 이후 경재 성장 속도는 실로 무시무시하다. 이에 따라 중국 돈의 값어치는 끝 없이 상승하고 있다. 최근 중국돈 위엔(元)화가 달러당 6.26元으로 최고치를 경신하였다고 한다. 

 궁금증에 한국 화폐와의 환율을 계산해 보니 100元이 무려 17,975원! 이천년대 초반 중국 베이징 우다오코우(五道口)의 위이엔대학교(语言大学)에서 어학 연수 시절 100元이 대략 한국돈 11,000원~12,000원 하던 시절과 비교해 보면 정말 엄청나게 올랐다고 볼 수 있다. 한국돈 값어치가 떨어진 것도 있겠지만 말이다. 

 참고로 중국 화폐의 기본 단위는 위엔(元)이다. 이 밑으로 지아오(角)와 펀(分)이라는 작은 단위가 존재한다. 10지아오가 1위엔, 10펀이 1지아오가 되지만 펀 단위의 동전의 경우 우리나라 1원 동전 처럼 거의 사용되지는 않는다.

 또한 베이징의 경우 위엔(元), 지아오(角)의 경우 그대로 위엔이나 지아오라는 말을 거의 쓰지 않는다. 윈엔의 경우 콰이(块), 지아오(角)의 경우 마오(毛)라는 호칭을 주로 쓴다. 즉 다시 말해 10위엔(元)은 10콰이(快)라고 호칭하는 것이 대부분이다. 

 그리고 내가 중국에 있을 당시에는 같은 단위의 중국 화폐가 구권으로 몇 종류가 더 있었지만 지금은 구권이 거의 사용되지 않고 있다고 한다. 당시에는 위조화폐가 상당히 많았는데 지금은 어떤지 잘 모르겠다.




위 이미지가 바로 현재 사용되고 있는 신권 지폐들이다. 



위 지폐들이 구권 지폐들, 지금은 거의 사용되고 있지 않다고 한다.


위 이미지가 사용되고 있는 중국 동전이다. 


이미지 출처는 http://www.kailash96.com/china/basic/cn_money.htm



<사진의 출처는 로이터(Reuter)>


 오는 15일(2012년 4월 15일)이면 타이타닉호가 침몰한지 100년째가 된다고 한다. 이를 기념하기 위해 당시 타이타닉(Titanic)호와 거의 같은 규모의 유람선 발모랄(Balmoral)호가 4월 8일 기념 항해를 출발했다고 한다. 타이타닉호가 출항했던 영국의 사우스샘프턴 항에서 출발한 발모랄호에는 당시 타이타닉에 탑승했던 승객수와 정확히 일치하는 1,308명의 승객이 타고 있으며 그 중 몇몇은 타이타닉에 탑승했던 승객들의 유가족이라고 한다.


<사진의 출처는 로이터(Reuter)>

 타이타닉호 승객의 의상을 재현한 이들도 배에 탑승했다.


<사진의 출처는 Boston.com>


 이 밖에도 제임스 카메론의 영화 타이타닉이 기념일에 맞추어 3D화 되어 재개봉 되는 등 100주년 기념 행사가 곳곳에서 벌어지고 있다. 승객과 승무원을 합해 총2,229이 탑승하고 있던 타이타닉호의 침몰로 1,517명의 목숨이 차가운 바다 속으로 사라졌으며 712명이 재앙에서 살아남았다. 


<사진의 출처는 Boston.com>


 100년이라는 짧지 않은 시간이 흘러버린 이 대참사는 바다속에 그 생생했던 흔적을 남겨놓고 있으며 100년 뒤 현재의 시간을 살아가고 있는 우리들 마음 속에 잔잔한 파문을 불러일으키곤 한다. 


아래 링크된 Boston.com에서 타이타닉과 관련한 생생한 고화질 이미지들을 열람할 수 있다.


Boston.com




  




 얼마전 네덜란드(Netherland의 예술가 집단 쿨 이모션(cool(E)motion)이 그린란드(Greenland)의 빙하위에 그들의 영혼의 메세지를 담은 조각 예술품들을 설치한 소식을 전해 드린 적이 있습니다. '그린란드 빙하 위의 숭고한 예술' 포스팅 보기 지구 온난화에 대한 경각심을 촉구하는 메세지를 담은 이 작품은 한때 그린란드에 존재했던 빙하에 몸을 의지하고 바다위를 정처없이 떠내려다니다 결국 그 위치가 유실되었습니다. 빙하가 모두 소실되어 바다속으로 가라 앉은 것으로 보입니다. 이 작품을 설치한 예술가들도 이 거대한 빙하가 모두 녹아 사라지는데 고작 3주 가량의 시간이 걸렸을 뿐이라는 것에 적지 않게 놀라고 있는 것 같습니다. 

<이미지 출처 cool (E)motion 웹사이트>
 그들이 정성들여 만든 작품은 깊은 바다속으로 사라져갔습니다. 예술가에게 있어 작품은 자신의 영혼과도 같은 존재일 것입니다. 언젠가 바다밑으로 사라질 자신의 작품을 만들며 또, 실제로 사라진 사실을 대면하며 적지않게 가슴이 아팠을 것으로 생각됩니다. 고작 취미 삼아 가끔 그림을 그리는 저도 변변찮은 제 그림이 사라자거나 회손되면 몹시 가슴이 아픕니다. 이들의 마음은 더 할 것이라고 생각됩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들의 이번 창작 활동은 더욱 아름답고 숭고하지 않은가 합니다. 아래의 링크를 클릭하시면 빙하위의 예술 활동을 한 그린 이모션의 웹사이트를 방문하실 수 있습니다. 마지막 가라앉은 작품에 관한 작가의 심정과 함께 이 작품에 관한 다양한 볼거리들이 있으니 꼭 한 번 방문해 보시길 바랍니다. 


 최근 IPCC의 지구 온난화 관련 수치들이 사실과 다르게 많이 과장되었음이 밝혀졌으며 지구 온난화 형상에 관하여 많은 관점의 차이가 발생하고 있기도 합니다. 더 나아가 지구 온난화가 조작된 것일뿐 사실이 아니라는 음모론까지도 나돌고 있습니다. IPCC가 지구 온난화 관련 관측 수치들을 대중의 관심을 유발하기 위해 과장하여 일종의 거짓말을 한 것이 사실이지만 이것이 지구 온난화 자체가 존재하지 않는 허위사실이라는 의미는 아닙니다. 과장되었을 뿐 우리에게 지구 온난화에 따른 위험성은 여전히 남아있는 것입니다. 특히나 우리 자신의 실제 체험들이 이 사실을 말해주고 있는 것입니다. 

<flickr 'Marketian'님의 사진>
 조금 있으면 한반도는 더이상 4계절이 뚜렸한 온대 기후지대로 분류할 수 없을지도 모릅니다. 세계에서 손꼽히는 온실가스 배출량 수치와 환경변화 속도를 기록하고 있습니다. 
 가끔 끔찍한 매연과 소음, 온실가스를 마구 뿜어내는 차들로 가득한 서울 시내를 걸을 때면 정말 저 많은 차가 우리에게 필요할까? 라는 의문이 듭니다. 큰 배기량의 차를 거들먹 거리며 떡하니 혼자 차지하고 앉아 여기 저기를 향해 욕하고 소리지르고 편집증적으로 클락션을 울려대는 우리 자신을 바라보면 아마도 그 의문은 더 커질 것입니다. 정말로 싸지 않은 유지비에 매연과 소음을 유발 시키고 한 발 더 나아가 지구 온난화까지 가속시키는 이 승용차라는 교통 수단을 위해 이런 스트레스를 감수해야 할까요? 지구 온난화의 주범중 하나인 차가 정말 우리들을 더 나아 보이게해 줄까요? 

 우리나라는 전기차 등 화석연료가 아닌 대체 에너지를 동력으로하는 자동차 기술이 생각보다 잘 발달되었다고 하더군요. 하지만 가장 큰 걸림돌이 도로 교통법이라고 하던데 정말 안타까운 사실입니다. 우리 한명 한명의 미래를 내다보는 안목이 절실히 필요한 것 같습니다.



 예술이란 무엇일까요? 저는 예술이란 인간의 표현수단 중 가장 숭고한 방식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예술은 그 자체의 존재만으로도 숭고함을 가지고 있지만 예술가의 영혼의 메세지를 품고 있을때 그 숭고함은 가장 빛나는 것 같습니다. 오늘 이 빛나는 숭고함을 가진 그린란드(Greenland) 빙하 위의 예술품 하나를 소개합니다.

 네덜란드(Netherland)의 예술가들이 그린란드의 한 빙하위에 설치한 이 예술품들은 지구 온난화에 대한 경각심을 메세지로 담고 있습니다. 이 cool (E)motion 프로젝트에 참여한 예술가들은 개썰매를 타고 이 혹독한 환경속으로 위험을 무릅쓰고 지난 달 3월 그린란드 빙하 위에 자신들의 작품을 설치 하였습니다. 3월 당시 아직 그린란드에 고정되어있던 이 빙하는 원래 위치에서 떨어져 나와 바다위를 떠 다니고 있는 상태입니다. 그리고 이 빙하가 모두 녹아 없어질때면 이 예술가들의 숭고한 메세지가 담긴 아름다운 예술품은 바다 속 깊은 곳으로 사라지게 될 것입니다. 이미 이 예술품은 만들어 지기 전 부터 시안부의 생을 가지고 태어난 것이며 때문에 더 아름다워 보이기만 합니다. 하지만 이 예술품의 이름다움은 많은 사람들의 가슴 속에 영원히 남아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빙하가 모두 녹아 이 예술품들이 바다 속으로 가라앉을 때 이 예술품을 인상깊게 본 많은 사람들은 마음속 깊이 안타까워 할 것이고 그 안타까움이 지구 온난화를 조금이라도 늦춘다면 이 예술품을 만든 작가들의 노력은 헛되지 않을 것으로 보입니다. 



 아래의 링크를 통하여 cool (E)motion 프로젝트의 웹사이트를 직접 들어가 보실 수 있습니다. 위의 이미지 출처는 이 웹사이트이며 이 웹사이트를 통해 구글 어스(Google earth)로 표시된, 이 빙하의 이동 경로도 보실수 있습니다. 이미 빠른 속도로 녹고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너무도 잘 알려진 미국 히어로 만화의 절대 대명사 슈퍼맨(Superman)의 초판본이 경매사이트인 코믹커넥트닷컴(ComicConnect.com)에서 150만 달러라는 사상 최고가로 미국 현지 시간 29일 한 익명의 구매자에게 날찰 되었다고 합니다. 150만 달러는 현재 한화로 약 16억 9천만원 정도이니 정말 어마어마한 금액입니다.

 이 초판본은 1938년 '액션 코믹스(Action Comics)'라는 미국 만화 잡지 창간호에  'Man of Steel'로 처음 그 모습을 드러낸 이 초판본으 지난 달 2월 100만 달러에 팔린 다른 초판본에 비해 50만 달러 가량이 더 비싸게 낙찰된 것입니다. 그 이유는 이 초판본의 보존 상태인데요. 거의 새책과도 다름없는 깨끗한 보존 상태를 유지한 것이 큰 이유라고 합니다.

 1938년 이 초판본은 총 20만권이 발행되어 13만권이 판매되고 7만권은 폐기 되었으며 현재 전 세계에 남아아있는 것으로는 100부가 채 안될것으로 예상되고 있으며 이 번에 낙찰된 최고 가격 기록은 앞으로도 쉽게깨지기 힘들것으로 보입니다.

 사실 저도 엄청난 만화광이고 가지고 싶은 만화책, 거기다 그 만화책이 희소성까지 있다면 많은 돈을 들여서라도 구입하고 싶어하는 편입니다만(가난해서 못하고 있을뿐 ㅋㅋ) 이 구매자(물론 상당한 재력가 이겠죠?)가 낸 금액은 정말 엄청나군요. 하지만 많은 슈퍼맨 팬들은 이 초판본이 이 돈 이상의 값어치를 가진 물건이라고 입을 모았다고 합니다. 

 무엇보다도 슈퍼맨은 지금도 여러 만화에 등장하는 히어로들의 아버지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니까요. 예전에 이 만화의 성공이 지금의 히어로 만화들이 서있을 수 있는 기반을 마련한 것이겠지요. 아마도 제가 억만장자가 된다면(뭐 별로 그럴 가능성은 보이지 않습니다만 ^_^;) 제가 정말로 좋아하는 무언가에 관해서는 조금 무리해서라도 거금을 내 좋을것 같습니다. 

 아래 링크를 누르시면 CNN의 관련 원문 기사를 보실 수 있습니다. 액션 코믹스의 표지도 살짝 보실 수 있으니 관심있으신 분들은 한 번 들어가 보시길 바랍니다.

 
<위 사진은 영화 쉰들러리스트에서 니암 니슨이 연기한 오스카 쉰들러입니다.>


 유대인인 스티븐 스필버그(Steven Allen Spielbeg)감독이 감독한 영화 '쉰들러 리스트(Schindler's List)'로 유명해진 쉰들러리스트가 사료수집용 웹사이트 .모먼츠인타임 닷 컴(MomentsinTime.com)에 220만 달러의 가격으로 올라왔다고 합니다.


 이 웹사이트 운영자는 익명의 판매자의 요청에 따라 옥션 방식이 아닌 가장 먼저 220만 달러 가격에 낙찰한 사람에게 판매하기로 했다고 합니다.

 2차 세계대전 당시 나치의 핍박에서 유대인들을 구하기 위해 오스카 쉰들러(Oscar Schindler)에 의해 만들어진 쉰들러 리스트(Schindler's list)는 이번에 판매될 개인 소장의 1부와 미국 워싱턴의 홀로코스트(Holocaust) 기념관, 독일의 코블렌츠(Koblenz)에 있는 기록보관소에 각각 한 부씩 소장되어 있으며 이스라엘의 야드 바셈 홀로코스트 기념화에 2부가 소장되어있습니다.

 1945년 4월 18일자로 된 이 명단은 13페이지에 801명의 남성 이름, 직업, 생년월일등이 기록되어 있다고 합니다.

 스티븐 스필버그의 영화 쉰들러 리스트를 통하여 알게된 오스카 쉰들러라는 인물은 자신의 전 재산을 털어 유대인들을 독일인의 손아귀에서 벗어나도록 했고 마지막 구출에 성공한 사람들을 향해 더 많은 사람들을 구하지 못한 사실을 눈물을 흘리며 고통스러워했다는 사실이 전해 지고있으며 영화에서도 그 장면이 표현되어 있습니다.

 오늘 이 기사를 보면서 많은 소중한 생명을 살리기 위하여 자신의 모든 것을 희생하는 것을 마다하지 않았던 오스카 쉰들러씨를 다시한 번 떠올릴 수 있었습니다. 저 사료의 가치는 220만 달러라는 거금으로 조차 매길 수 없는 801명의 고귀한 생명의 값어치 입니다.

위 포스팅은 CNN연합뉴스의 기사 '쉰들러 리스트, 220만 달러에 팝니다.와 위키 백과를 참고하였습니다.
<위의 사진은 flickr에서 US Army Korea - IMCOM님이 공유해 주신 사진입니다>

 뉴스위크지에 따르면 미국이 한 전쟁중 가장 긴 기간 이어졌던 전쟁은 한국의 6.25전쟁을 꼽았다고합니다. 공식적인 평화조약없이 정전된 상태이므로 아직도 전쟁이 계속 되고 있다는 견해에서 이런 결과를 낸 것이라고 합니다. 정전까지 3년간 지속된 전쟁에서 약 200만명이 희생되었고 미국인의 희생은 3만7천 5백명이었다고 하네요. 실로 어마어마한 양의 희생입니다. 전쟁이란 정말 끔찍한 것입니다.

1위 : 한국전(6.25) - 아직도 지속중
2위 : 베트남전 - 1964.8~1975.4
3위 : 아프카니스탄 전쟁 - 2001.10~지속중
4위 : 미국독립전쟁 - 1775~1783
5위 : 이라크전 - 2003~ 지속중
6위 : 2차 세계 대전 미국 개입기간 - 1941 ~ 1945
~
가장 짧은 전쟁은 6주의 기간만에 끝난 걸프전이라고 합니다.

 미국이라는 국가는 그 역사가 그리 길지 않음에도 엄청난 양의 전쟁을 치뤄온 나라같습니다. 어쨌든 전쟁이란 인간이 만들어낼 수 있는 최악의 비극입니다. 예전의 전쟁을 돌이켜 보는 것은 앞으로의 전쟁을 미리 막는데 조금이나마 도움을 주겠지요.

flickr의 US Army Korea - IMCOM님을 방문해 보면 많은 양의 한국전 사진들을 볼수 있습니다. 아이디를 보면 한국전에 참전한 미군이었는지도 모르겠군요. 아무튼 우리가 지금 안전하게 살아가고 있는 바로 이 땅에서 일어났던 비극을 생생히 느껴 볼 수 있는 사진들이 많이 공유되어 있으니 한 번 감상해 보시는 것도 좋을 듯합니다.
<위 사진은 flickr의 'rosewlthoutathorn84' 님이 공유해 주신 사진입니다.>

 안네 프랑크(독일 : Annelies Marie Frank 또는 네덜란드 : Anne Frank)의 일기는 세계 곳곳의 많은 분들이 한 번쯤 읽어봤을 책입니다. 2차 세계대전 당시 나치의 박해를 피해 네덜란드 암스테르담 다락방에서 1942년~1944년의 2년 남짓한 시간동안 숨어 살면서 키티라는 이름의 가상 친구에게 쓴 일기를 안네가 죽고 전쟁이 끝난 후 그녀의 아버지가 그녀의 일기를 발견해 편집하여 출간한 것이 안네의 일기입니다. 전쟁 당시 핍박받던 유태인들의 고통을 생생하게 느낄 수 있게 해 주는 것으로 유명합니다.

 안네의 생존당시 같이 수용소 생활을 했던 71세의 네덜란드 출신 베르테 마이어가 이달 말 출간하는 자서전에서 안네가 수용소 아이들을 위해 자신이 직접 창작한 동화들을 들려주었다고 밝혔다고 합니다. 일반적으로 슬픈 내용의 동화들이었지만 아이들이 수용소 안의 끔찍한 생활속에서 잠시나마 벗어날 수 있도록 많은 도움이 되었다고 합니다. 베르테 마이어 역시 당시 7세의 어린 소녀로 안네의 동화를 들으며 하루 하루의 공포를 잠시 잊을 수 있었다고 합니다.안네의 일기나 창작동화를 아이들에게 들려준 여러 사실들을 볼때 안네라는 어린 소녀는 문학적 상상력이나 재능이 무척 뛰어났던 것으로 생각됩니다. 이런 꿈 많고 재능있는 소녀가 15세라는 어린 나이에 자유롭게 삶을 즐겨보지도 못하고 인생을 마감한 것이 정망 안타깝습니다. 그녀는 1945년 수용소 생활을 견디지 못하고 장티푸스와 영양실조로 먼저 숨진 언니를 따라 세상을 떠났다고 합니다.

 참고로 안네의 일기에도 등장하는 안네가족의 은신처 생활을 적극적으론 도왔던 안네 프랑크의 마지막 조력자라 불리는 미프 기스(Miep GIies) 100세의 나이로 올해 초 돌아가셨다고 합니다. 당시 안네 가족이 나치에게 잡혀간 이후 안네의 일기를 줄곳 보관하다가 이 를 책으로 출간하는데 많은 도움을 주었다고 합니다. 젊어서 좋은 일을 하시고 장수를 누리셨습니다.
<위 사진은 flickr에 공유된 사진입니다. 진흙 투성이의 칠레국기와 폐허가 인상적입니다.>

 어제 밤 만원 전철 속에서 뉴스위크(Newsweek)지를 펼쳐 보았습니다. 가장 인상에 남는 글은 Ben Casnocha가 쓴 지진 공포속의 희망(원제 : There was nothing but silence and darkness)이었습니다. 담담한 표현을 통해 칠레의 강력한 지진이 사람들에게 어떠한 영향을 주었는지 간접적으로나마 절실히 느끼게 해주는 글이었습니다.


 '지난 2월 27일 오전 1시 45분 블며시 침대에 몸을 뉘었다. 아주 떠들서썩한 밤이었다. 이웃집에서 요란한 생일 잔치가 있었다. '생일 축하합니다!'노래가 몇 번이나 울려 퍼졌다 잠잠해지기를  기다리며 -중략- 칠레의 여름 공기가 나를 꿈나라로 이끓도록 눈을 감았다.

 한 시간 뒤 갑자기 아파트가 요동쳤다. 주방의 꽃병이 넘어졌다. 벌떡 일어나 랩톱이 책상에서 떨어지지 않게 붙잡았다(글쟁이가 아니랄까 봐 그게 본능적인 첫 번째 반응이었다.) -중략- 흔들림이 그치자 침묵과 암흑뿐이었다. 전기가 나가버려 전자제품의 깝빡거리는 불빛도 냉장고의 나지막이 위윙거리는 소음도 없었다. 비명도 경적 소리도 울부짖음도 들리지 않았다. 어둠의 정적 뿐이었다.

 -중략-그쳤다가 다시 시작되는 여진이 원래의 지진보다 더 무서웠다. 마치 땅이 움찔움찔하는듯했다. 가끔 조용해질때면 "주여 감사합니다! 주여, 감사합니다!"라고 외치는 소리가 들렸다. 두려움과 고마움이 뒤섞인 목소리였다.

 -중략-다른 곳의 재난에서 수퍼마켓을 약탈하는 사람들을 TV로 봤을 때는 무조건 그들을 책망했다. 어지 그럴 수 있느냐고 생각했다. 하지만 지금 부숴진 수퍼마켓에서 나오는 나이든 칠레 여성들의 모습을 보면서 심한 갈등이 생겼다. 그들은 최루탄을 피하며 카메라에 대고 소리쳤다. "마실 물도 없고 음식도 없는데 어쩌란 말이냐?"지금 내가 깨닫는 점은 지적이지도 학구적이지도 않다. 공감의 문제일 뿐이다.

 -중략- 일시적인지 모르지만 지진을 함께 겪으면서 생긴 유대감이 언어의 장벽을 뛰어넘었다.우리 모두는 진부한 격언을 잘 안다. '서로 생각이 다른 사람들도 같이 어려움을 겪으면 뭋인다.' '인류애에는 국경이 없다 '등등 그런 상투적인 격언도 삶 자체가 위태로울 때는 피부에 와 닿는 진실이 된다.'

-뉴스위크 한국판 2010년 3월 24일자 16페이지의 기사 일부 발췌-


 이 글은 칠레에 거주하고 있는 외국인의 입장으로서 칠레 현지의 분위기를 정말 생생하게 잘 표현해 주었다. 언제 내 목을 움켜쥘 지 모르는 죽음이 항상 내 옆에 있는 상황에서 더욱 더 지금 이 순간 살아있는 것을 감사하는 이들을 보니 비교적 안전한 입장에 있는 사람으로써 많은 새로운 것들이 느껴 집니다. 꽤 오래전 사진집에서 한 흙인 노인이 너무도 행복한 표정을 짓고 있는 사진을 본 적이 있습니다. 그러나 그 사진의 다음 장을 넘기는 순간 경악하고야 말았습니다. 그렇게 행복하게 웃을 수 있는 노인은 한쪽 팔과 다리가 없음을 다음 전신사진에서 알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그 노인은 오랜 분쟁이 계속된 아프리카의 두 나라 국경 사이에 위치한 마을의 거주민으로 이 마을 주민들은 근처에 매설된 지뢰를 파내서 근근히 먹고 살고 있다고 했습니다. 그 노인의 아들 딸 손주들 조차도 이런 위험한 지뢰파기를 하고 있다고 했습니다. 사진작가는 노인에게 물었다는군요. '어르신은 어떻게 이런 행복한 웃음을 지을 수 있습니까?'
노인이 대답하길 ' 내가 이 순간 살아서 내 손자가 뛰어 노는 것을 볼 수 있다는 것이 무척 행복하오.'
 최소한 이 노인이나 칠레의 사람들보다는 안전한 우리는 이 사실을 얼마나 행복하게 받아들이고 있을까요?

 마지막으로 인간이란 참 나약한 존재입니다. 우리가 당연하다고 생각하며 발 딛고 있는 이 지구가 조금만 심통을 부려도 그 존망이 어찌 될지 알 수 없는 존재이지요. 그만큼 삶을 사랑하고 그것을 쥐려는 의지를 갖고 또한 감사하며 살아가야 할 것입니다. 말은 쉽지만 실천하긴 참 어여운 문제 갔습니다. 하지만 포기해서는 앉되겠지요. 그나저나 지진 대비가 잘 되어있는 칠레도 저 상태인데 우리나라는 지진이 드문 지역이라도 아무런 대비가 안되있어 걱정입니다. 다. 드물기는하지만 지진이란게 단 한 번일어나도 무서울라면 끝도 없는 것이니 말입니다.

마지막으로 이글의 작가 블로그를 링크해 봅니다.
 

 8.8규모의 강력한 지진이 칠레 앞바다에서 발생해 300명 이상의 희생자를 만들었디고 합니다. 위의 사진에서 빨간 X표시가 대충의 진앙지 이고 환태평양 조산대를 따라 분포된 작은 빨간 표시들이 지진 다발 지역입니다.최근 아이티에 발생했던 진도7 강진에 비해 1000배이상의 위력이었다니 얼마나 강렬한 지진이었을지 짐작할 수 있습니다. 기록된 역대 지진 중 7번 째로 강력한 지진이었다고 하네요. 그래도 지난달 20만명 이상의 인명피해를 가져왔던 아이티 지진에 비해 희생자 규모가 무척 적은데요 진앙지가 좀더 깊었다는 원인과 함께 칠레의 지진 대책 정책의 효과라고 합니다. 평상시 있었던 지진 대비훈련이나 철저한 내진 설계 건물등이 희생 규모를 많이 줄였다고 합니다. 불행 중 다행입니다. 
 세계최대의 구리 생산지인 칠레의 광산들이 구리 생산이 중단되어 벌써부터 세계구리값이 치솟고 있다고 합니다. 그리고 칠레의 항만, 공항을 비롯한 거의 모든 교통 시설이 중단되었고 통신 상태 역시 피해가 심각하다고 합니다. 다행이 주칠레 한국인들의 인명피해는 없었다고 합니다.
 지진의 파장이 만든 해일이 일본에 이르기 까지 21시간이 걸렸다고 하는대 그 높이가 6M에 달했다고 합니다. 일본은 오늘 하루 종일 태평양일대의 모든 교통을 금지 시키고 해안에 거주하는 주민들을 높은 곳으로 대피시키는 등 초 비상사태였다고 합니다. 그도 그럴 것이 50년전 칠레 같은 곳에서 발생한 지진에 의한 해일로 130명 이상의 인명피해를 겪었다고 합니다. 이번에도 우리나라는 일본이 해일의 대부분을 몸으로 막아줘서 거의 피해가 없다고 합니다.
 칠레는 1973년 이후로 진도 7이상의 지진이 3건 있었고 1960년에 기록상 최대 강진인 진도 9.5의 강진에 1655명의 생명을 잃었다고 합니다. 그에 반해 아이티는 거의 대규모 지진이 없던 터라 피해 차이가 엄청나요.
 최근 약 50년간 없던 강진들이 일어나고 있는데 아마도 강진이 자주 일어나는 시기가 도래했다고 보는 지질 학자들도 있습니다. 그도 그럴 것이 간단히 생각해봐도 강진은 여러 지각판에 강한 충격을 줘서 여러곳에 재차 지진을 야기 시킬 수 있으니 말입니다.
 최근 아이티의 지진이 있은 후 서울 근교에서 진도 3이상의 지진이 발생해 필자도 강하게 진동을 느꼈던 적이있습니다. 우리나라는 지진의 안전 지대로 분류되어있지 않습니다. 충분이 지진이 적은 확률이지만 발생할 확률을 가지고 있으며 최대 6.4정도의 지진도 발생할 확률이 존재한다고 합니다. 대규모 지진이 별로 없던 아이티도 그런 큰 피해를 입었지 않습니까? 많은 시기 일본과 한국의 지리적 위치상 일본밑의 지각이 지진의 힘을 무마 시켜준 적이 있지만 갈수록 지진의 위험은 커질 수 있다고 봅니다. 내진 설계나 지진 대비책따윈 거의 전무하다 싶은 우리나라인 만큼 진도 6 이상의 지진에도 국가적 위기에 처할 만큼 크게 위험하다고 봅니다. 지금부터라도 늦으나마 지진에 대한 대책마련에 관심을 가져야 할 때라고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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