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디오자망트의 열정(La Passion de DIOSAMANTE)

그림 : 장 클로드 갈(Jean-Claude Gal) 

글 : 알렉산드로 조도로프스키(Alexandro Jodorowsky)


 프랑스는 만화가 하나의 예술 장르로서 자리매김하고 있는 문화 선진국이다. 이런 프랑스 만화 예술계에서 거장으로 추앙받고 있는 고(故) 장 클로드 갈은 그 정교하고 치밀하면서도 역동적인 그림채 때문에 평생에 단 다섯 작품의 만화를 그렸을 뿐이다. 오늘 소개하는 디오자망트의 열정 역시 10년의 기간동안 집필해 완성한 약 60페이지 정도 분량의 작품이다. 그의 다섯 작품 중 유일하게 전체가 채색된 것으로 여타 그의 작품들이 흑과 백의 강렬한 대조로 강한 인상을 남겼다면 신비로운 색감으로 채색된 디오자망트의 열정은 좀 더 부드럽고 인간적인 인상을 보여준다. 


 끝없이 눈부신 아름다움을 가지고 있지만 잔인하고 욕망에 충실하고 이기적인 성격의 아리스의 강인한 여왕 디오지망트, 아리스의 모든 남자들은 그녀의 연인이 되고 싶어 안달이다. 하지만 그녀의 연인이 되기 위해서는 살인이 용인되는 잔인한 시합에서 승자가 되어야 한다. 하지만 그 시합의 승자마저 시합의 부상으로 바로 죽자 성안의 생활에서 염증을 느낀 디오자망트는 자신의 열정을 해소하기 위한 기나긴 여정을 떠난다. 


 그녀의 여정과 여정 끝에 그녀가 마주한 진실은 마치 불교적인 해탈을 연상시킨다. 모든 호화와 세상 모든 것을 손아귀에 쥐고 있던 것 처럼 보이던 잔인한 여왕이 모든 것을 버리고 구도자로서 떠나는 여행을 장 클로드 갈은 강렬하면서도 세밀한 필체와 몽환적인 색채로 표현하고 있다. 국경과 종교, 인종을 넘어선 독특한 세계관과 주제가 장 클로드 갈의 그림과 어울어져 무척 신비로운 느낌을 주는 역작이다. 



제목 : 핀업(Pin-up) 
글 : 얀(Yann)
그림 : 필립 베르떼(Pillippe Berthet)
권수 : 6권~(한국에서는 2권 까지 출판후 절판)
최초 연재 : 1994년

 역시 비운의 출판사 비앤비(B&B)가 출판한 명작 프랑스 만화이다. 아쉽지만 현재 비앤비가 사라진 상태로 더 이상 이 핀업 작품 역시 2권 이후의 내용은 번역본으로 감상할 수 없다는 크나큰 아쉬움을 남기고 있다. 이럴 때는 정말 대중화된 문화 이외에ㄴ 다양한 문화를 쉽게 즐길 수 없는 한국 사회가 무척이나 아쉽기만 하다. 현재 비앤비의 핀업은 2권 합본으로 1권이 발매된 이후 절판된 상태이다.

 일본의 진주만 폭격 사건으로 1941년 미국이 2차 세계대전에 참전하면서 이야기는 시작된다. 티 없이 순수한 금발 소녀 도티는 전쟁에 대한 환상을 가지고 있던 약혼자 조를 전쟁통 속으로 떠나보내고 매일 그의 편지를 애타게 기다리면서 하루 하루를 보낸다. 때 마침 친구의 소개로 핀업걸(Pin-up Girl) 모델로 발탁되고 포이즌 아이비라는 가명으로 다시 태어나게 된다. 또한 애타게 기다리던 조의 이별통보까지 받게 되며 순수하고 티없이 맑던 그녀는 점점 변해가게 된다.

 여기서 핀업걸이란 2차 세계 대전 당시 군인들의 전의 시름을 달래고자 벽이나 사물함의 문짝 등에 성적 판타지를 자극하는 여성의 사진을 핀으로 고정해 붙여놓았던 데서 따온 단어이다. 당시 사진이라는 매체가 어떻한 콘텐츠 보다도 힘이 있던 시절 전장의 군인들에게 핀업걸들은 여신과도 같았을 것이다. 대부분 성적인 어필이 강하고 무엇보다 백치미가 강조된 여성들의 사진이 핀업걸의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었다. 대표적인 핀업걸이라면 마릴린 먼로나 배티 그래이블 등을 들 수 있다. 한 시대를 대표하던 문화 아이콘이었던 핀업걸도 여성 인권운동의 강화, 제작 체제의 붕괴등으로 지금은 거의 그 모습을 찾아보기 힘들다. 

 사실 핀업걸은 미국 헐리우드에서 시작된 문화라고 할 수 있다. 프랑스의 경우 대체 단어 조차 없어 그냥 영문 표기인 핀업을 그대로 사용했다고 한다. 이 처럼 핀업 문화에서는 제 3자였던 프랑스의 작가들이 핀업걸을 주제로 만화를 만들어냈기에 이 작품이 더욱 의미가 있는 것 같다. 핀업걸을 단지 상품화된 여성들의 사진 한 장으로 보기보다는 그 속에 핀업걸로 살았던 한 여성의 삶을 섬세하면서도 만화 특유의 위트도 잊지 않으며 표현하고 있다. 변해가는 도티의 앞으로의 삶이 너무도 궁금해지게 하는 아쉬운(국내에서만) 작품이라고 할 수 있겠다. 별로 큰 기대가 되지는 않지만 국내에서 다시 이런 훌륭한 작품을 번역본으로 다시 만나보고 싶다는 마음이 간절하다.
 
제목 : 죽음의 행군
          대성당의 비밀
             정복자의 군대
              아론의 복수
그림 : 장 클로드 갈
        (Jean-Claud Gal)
글 : 장 피에르 디오네
   (Jean-Pierre Dionnet)

 이번에 소개할 만화는 만화 예술의 선진국인 프랑스 국민에게 자긍심과도 같았던 장 클로드 갈의 역작 죽음의 행군입니다. 문학동네라는 출판사에서 번역하여 국내에 들여온 것으로 고급 종이에 인쇄상태도 훌륭한 편입니다. 번역 상태는 대사가 그리 많지 않은데다 엄청난 그림에 압도되어 별로 눈에 들어 오지 않는 것이 사실이지만 그럭저럭 괜찮은 것 같습니다. 표지를 보시면 '미친 듯한 손이 아니면 그릴 수 없는...'이라는 표현을 사용하였는데 이 책을 한 번 펴 드시면 바로 이 표현에 공감하실 것입니다.
 1942년 출생한 장 클로드 갈은 1972년 파리 근교 중학교에서 학생들에게 뎃생을 가르치다 만화 창작을 시작했다고 합니다. 1977년 장 피에르 디오네와 함께 본 서적에 수록된 '정복자의 군대'를 출판했으며 1980년 부터 13년이라는 엄청난 세월을 들여 역시, 본 서적에 수록된 '아론의 복수'를 집필했습니다. 정말 극도로 세밀하도 정교한 묘사 때문에 생전에 고작 5권의 책을 출판했을 뿐 이지만 그의 책들은 프랑스의 모든 만화 도서관에 애장 도서로써 소장되어 있을 정도로 높은 가치 평가를 받고 있습니다.. 표지의 그림은 '아론의 복수'에 등장하는 한 장면을 채색한 그림입니다. 극단적으로 정교하고 치밀한 펜화를 감상할 수 있는 작품으로 약 15년이 걸려 완성한 이 작품 앞에 숙연함 마저 느껴질 정도입니다. 특히, '대성당의 비밀'의 정신병적일 정도의 치밀한 그림은 짧지만 임펙트있는 내용과 함께 보는이로 하여금 엄청난 충격을 받게 합니다. 장 클로드 갈은 1994년 휴양차 방문한 스코트랜드에서 뇌출혈로 사망하였습니다. 장 클로드 갈의 그림을 단 돈 2만원에 국내에서 볼 수 있었다는 것은 저에겐 큰 영광이었으며 지금 제가 소장한 그림 서적중 보물 1호 라고도 할 수 있습니다. 프랑스 만화가 보여주는 그림의 한 극의를 감상해 보고싶은 분들에게 적극 추천해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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