각박한 서울을 벗어나 작년 가을부터는 한적한 자연이 살아있는 동네에 작업 공간과 주거 공간을 옮겨와서 정말 만족스런 생활을 즐기고 있다. 워낙 돌아다니는 걸 좋아하는 나에겐 이 동네 구석 구석이 모두 탐험, 모험 거리다. 물론 탐험이나 모험이라기 보단 가벼운 산책 수준일 뿐이지만 말이다. 최근 몇 달간은 너무도 바쁜 나머지 동네 탐색을 미루고 짬짬이 동네 몇 바퀴(한 바퀴가 딱1Km) 조깅하는 게 다였다. 조깅할 땐 꼭 나를 따르는 친구 한명이 있었으니, 태어난지 5년된 하얀 암컷 말티즈 앤지(나는 'Angel'에서 'Ange'라는 애칭을 이름으로 사용한 것인데 많은 이들이 'No Good'즉, 'NG'를 연상시켜 조금 곤란한 이름이긴 하다.)다. 서울에서는 참 산책시키기 난처한 경우가 많았을 뿐더러 목줄 없이 밖에 나가는 건 상상도 못했는데 이곳은 그런 문제가 전혀 없어 나도 실컷 뛰고, 앤지도 실컷 뛰며 자유를 만끽할 수 있어 좋다. 



 위 녀석이 바로 앤지다. 원래는 귓털이 긴게 매력인 털복숭이 아가씨지만......


 

 최근엔 요렇게 내가 멍멍이용 바리깡(이거 도대체 정확한 용어가 뭐지?, 머리깍는 전동공구?)귓털을 짧게 잘라 놓았다. 이 녀석 무척 예민한 편이라 귀와 피부, 눈이 지 털로 인해 염증을 일으킬 때가 많기 때문이다. 이번에 내가 첨으로 바리깡을 이용해 미용을 시켜봤는데 그럭저럭 괜찮은 것 같다. 돈도 절약되고 시간도 절약되고, 그리고 무엇보다 전문 애견 미용의 청결도가 의심스럽기도 하다. 나만 조금 시간 투자해서 앤지털 실컷 먹으면 그만....흐흐



 돈주고 한 전문 애견 미용을 받으면 요렇게 된다. ㅋㅋㅋ



 그건 그렇고 최근 그나마 많이 시간적 여유가 생겨 짬짬히 공기 좋은 동네에서 산책을 즐긴다. 물론 앤지도 함께다. 하지만 최근, 정확히 12월 19일 큰 눈이 온 적이 있다. 이 날 할 일이 많았지만 일단 눈 오는 멋진 경치를 보니 밖으로 나가 동네 이곳저곳 돌아다니며 설경을 감상하고 싶은 욕구가 치솟았다.



 내가 나갈 채비를 하자 앤지가 간절한 눈 빛으로 날 쳐다봤다. 하지만 눈이 상당히 많이 와서 앤지가 홀딱 젖을게 뻔해서 그냥 혼자 나가려는 순간 왠일인지 배낭에 넣고 나가보자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까탈스런 성격의 앤지가 가방 안에 가만히 있을지가 의문이었지만....



 왠걸.... 무척 편하게 있는게 아닌가!!! 안에 담요로 돌돌 말아 가방에 넣고 나 역시 눈 속에서 돌아다닐 채비를 모두 갖추고 밖으로 향했다. 



 요녀석 가방안에서 이렇게 얌전할 줄은 상상도 못했다.



 이 날 구경한 집 근처 설경은 실로 멋졌다. 내리면 5분만에 더러운 오물로 변하는 서울 눈과는 비교가 되지 않았다. 뽀득뽀득 걷는 느낌도 푹신하니 무척 좋았다. 그러고 보니 그동안 내가 눈을 정말 좋아한다는 사실을 잊고 살았다는 점을 이곳에 와서 알게 되었다.



 집 앞에는 작은 호수가 있는데 눈이 언 표면 위에 눈이 쌓이니 호수인지 알 길이 없다. 위에 올라가 보고 싶은 마음은 간절했지만.......



 집에서 3~5분만 걸어나가도 이런 자연이 살아있는 산책길이 존재한다는 것은 평생을 서울서 태어나고 자란 나에겐 큰 행복이다. 물론 서울도 내가 어렸을 땐 이지경까진 아니었지만 지금은 사람이 너무 많은 것 같다. 때문에 차도 너무 많다. 일종을 슬럼화가 아직도 진행중인게 서울인 것 같다. 



 이 날 날씨는 정말 변화 무쌍했다. 눈내리는 게 멈추는 것을 보고 나왔지만 수시로 함박눈이 내리곤 했다. 잠시 나무 밑에서 배낭을 내려 그동안 찍 소리 없던 앤지를 내려 보았더니 머리에 눈이 수북하다. 털어주고 머리에 수건을 씌워주었다. 배낭에서 따뜻하고 편하게 눈 구경하는게 좋은 모양이다. 조금 이라도 불만이 있으면 가만 있을 아가씨가 아니니까~.


 수시로 눈만 내린게 아니라 수시로 해도 떴다. 날씨와 경치, 등에 업힌 앤지만 생각해도 정말 걷는게 재밌었다. 



 설경 만큼이나 하늘의 변화무쌍한 구름들이 정말 멋졌다. 원래 사진 찍는 것을 무척 싫어하고 특히 이렇게 돌아다닐 때(맛있는 음식을 먹든, 왁자지껄 친구들과 놀든, 여행을 하든,......)는 직접 보고 느끼는 시간이 아까워 사진 찍는데 시간을 낭비하지 않는 편이지만 그래도 요즘엔 가끔 사진을 찍곤 한다. 아마도 아이폰을 쓰고 난 이후로 변한 것 같다. 또 하나 블로그 생활을 즐기면서 사진 찍는 일이 늘었다. 그래봤자 사진 찍는 것은 30번중 1번 꼴 정도이지만 말이다. 



 이 날의 좋은 경험 이후로는 가끔 산책할 때 앤지를 배낭에 업곤 한다. 요녀석도 좋아하거니와 매일 나갔다 와서 씻길 수도 없으니 일석이조다. 앤지의 피부는 민감해서 잦은 목욕은 피부 트러블로 이어지기 때문에 목욕은 10일에 한 번 정도고, 산책이나 조깅 후 발 닦아주기, 배낭에 업고 산책하기 등을 병행한다. 그러고 보니 위 사진 처럼 요즘 귀 털이 짧아진 앤지는 꼭 패릿같아 보이기도 한다. 대체로 몸이 길고 머리가 작으며 하얗기 때문이다. 하하하



그래서 이후로도 가끔 나는 '멍멍이 업고 산책하기'를, 앤지는 '사람한태 업혀 산책하기'를 즐긴다. 

 

 마지막 한 컷!, 눈 깜박이며 코 핥는 장면이 찍혔는데 마치 메롱~ 하는 것 같다. 하하하 나중엔 마당에서 큰 개도 한 마리 키워보고 싶다. 옆집에는 큰 진돗개 두 마리가 있긴 하지만......




 나에게 아침이란 꽤 괴로운 시간대이다. 남자치고는 혈압이 낮은 편이라는 말을 들은 적이 있는데 그 때문인지는 모르겠지만 잠을 푹 자더라도 아침에 상쾌함을 느끼는 일은 극히 드물다. 잠에서 깨어나는 시간도 오래 걸리는 편이다. 때문에 아침에는 무엇을 하든 대체로 효율이 무척 낮은 편이다. 내 능력이 제대로 발휘되려면 기상후 최소 3시간 정도가 필요한 것 같다. 


<현재 작업실 근처는 아침 산책을 즐기기에 무척 좋은 환경을 가지고 있다.>


 그래도 아침형 인간을 강요받는 한국 문화의 영향때문인지 아침에 일어나 식사후 효율이 떨어져도 일을하게 되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역시나 정신이 맑지 않고 컨디션이 좋지 않은 상태로 만족할 만한 결과를 만들기는 거의 불가능에 가깝다. 


 

 하지만 요즘 몇일간, 일종의 발상의 전환을 실행중이고 그 결과에 꽤 만족중이다. 그렇다고 뭐 대단하고 기발한 발상의 전환은 아니고 효율이 나쁘고 컨디션이 나쁜 아침 시간에 스트레스를 받으며 낮은 효율을 감안하고서라도 무언가를 하기 보단 음악을 들으며 가볍게 산책을 하며 사색을 즐기기로 한 것이다. 하지만 이 산책은 생각 이외로 큰 효과를 가지고 있었다.

 


 내가 살벌한 서울을 떠나 용인으로 작업실을 옮긴 후 근처에는 자연이 살아있는 풍경이 잔뜩있어서 즐겁다. 하지만 지금 처럼 아침 산책을 즐기기 전까지 이런 좋은 환경을 100% 즐기고 있다기에는 무리가 있었다. 인근의 대학 캠퍼스와 뒷산의 산책로는 아침에 산책을 즐기기에 더 없이 좋은 환경이다. 


 

 요 몇일 아침 산책을 즐기며 알게된 장점은 이렇다. 우선 아침에 잠에서 깨어나 느끼는 불쾌감이 많이 줄어든다. 그리고 아침 시간의 나쁜 컨디션에서 회복되는 시간이 빠르다. 아침에 억지로 일하며 감당해야 하는 스트레스 대신 마음의 여유를 느낄 수 있다. 점심 식사가 더욱 맛있고 오후 시간의 컨디션이나 집중력이 200% 향상되며 하루 종일 더욱 좋은 기분을 즐길 수 있다. 좋은 음악을 들으며 자연속에서 산책을 즐기다보면 사색을 통해 좀 더 창의적인 발상이 가능해진다. 아침 산책에서 산책이 끝난 후 샤워까지 단 1시간 30분 정도의 여유로 이 처럼 많은 장점을 누릴 수 있다.


<최근 전에 없이 많은 양의 호랑나비를 목격하게 된다. 크기도 상당히 큰데 극심한 기후 변화의 영향때문일까?>


 그동안 살아오면서 왜 진작 이런 아침 산책을 즐기지 않았는지 안타깝기만 하다. 특히, 극심한 더위가 서서히 숙으러들고 차츰 가을의 정취를 느낄 수 있는 요즘인 만큼 산책을 즐기는 것은 더욱 즐겁기만 하다. 산책을 하다 가끔 하늘을 올려다 보면 나무 사이로 보이는 하늘이 어찌나 높고도 푸르른지 말로 설명하기가 쉽지 않다. 가을 하늘이 더 높고 푸르게 보이는 이유를 과학적으로 설명하자면 이렇다. 가을은 다른 계절과 다르게 대기가 건조하고 안정되어 있는 경우가 많다. 대기가 안정되어 있기 때문에 지표의 불순물이 대기중으로 날아 오르지 안아서 하늘이 맑고 깨끗하다. 대기중에 순수한 공기 농도가 높을수록 푸른 빛이 산란될 확율이 많아져 우리눈에 더욱 푸르러 보이는 하늘을 볼 수 있는 것이다. 물론 이런 설명으로는 가을 하늘을 바라보는 기분이 충분히 전해지진 않는다. 


<근처의 꽤 넓은 대학 캠퍼스, 역시 산책을 즐기기 좋은 장소이다. 최근엔 개학으로 학생들이 많다.>

 내 인생에서 가장 큰 목표는 사회적인 성공도 물질적인 부유도 아니다. 바로 진정한 행복을 찾기위해 항상 매진하는 것이다. 때문에 이 행복을 위해 나는 항상 남들보다 다양한 것을 두려움 없이 모험해 보고 시도해보고 이를 즐긴다. 때론 이런 시도가 나에게 아무런 충족감이나 행복감을 주지 않을 때도 있지만 이번 아침 산책 처럼 생각 이외의 큰 행복감을 줄 경우도 많다. 내 꾸준한 인생관이 나에게 알려준 중요한 한가지 사실이 있다면 행복을 위해 필수 불가결한 조건 하나가 바로 마음의 여유라는 것이다. 요 몇일간의 아침 산책을 통해 이 점을 다시금 확신해 보았다. 앞으로는 꾸준히 아침 산책을 즐겨보아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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