멜 깁슨(Mel Gibson, 1956)주연의 엘지 오브 다크니스(Edge of Darkness, 2010), 실로 강렬한 인상을 남기는 영화였다. 30년 국가를 위해 경찰로서 복무한, 유능한 베태랑 형사 크레이븐(멜 깁슨 분), 그에게 남은 것은 눈 앞에서 처참하게 살해당한 딸의 주검뿐이었다. 상상하기 조차 힘든 슬픔과 분노를 감추며 딸을 앗아간 거대한 음모에 맞서 홀로 힘든 싸움을 해 나간다.
영화 엣지 오브 다크니스는 헐리웃 영화에서 쉽게 볼 수 없는 절제의 미학을 극도로 잘 표현해 놓았다. 견디힘들 정도의 고통을 겪고도 이성을 잃지 않고 힘든 싸움을 계속해 나가는 크레이븐을 보고 있으면 깊은 슬픔과 분노는 어느사이 자연스럽게 관객의 몫으로 넘어간다. 치밀하고 섬세하지만 그러한 이 영화만의 장점을 과대 포장하지않는다. 인간의 극한의 슬픔과 분노를 표현하고 있지만 과장된 오열이나 잔인한 복수를 강조하지도 않는다. 70의 장점을 가지고 있으면 120으로 과대 포장하는 다수의 영화들과는 달리 90의 장점을 90 그대로 보여준다. 역시 이 영화의 백미는 바로 절제된 표현에있다.
이미 60의 나이(영화 개봉 당시 54, 현재 58)를 바라보고 있는 숙성된 연기자 멜 깁슨의 연기는 놀라울 정도로 경지에 올라있다고 할 수 있다. 그가 연기한 크레이븐은 유능하고 냉철한 형사이면서, 나를 비롯한 대다수 남성들이 그렇듯, 감정 표현에 서투른, 하나뿐인 딸을 가슴 깊이 사랑하는 평범함을 가진 남자다. 오랜만에 사랑하는 딸을 만나 표현이 어색하게 나마 딸에 대한 사랑과 만남의 기쁨을 감추지 못하는 그에게 딸은 싸늘한 주검으로 안기게 된다. 슬픔과 분노로 얼룩진 크레이븐, 하지만 영화는 이 어느 하나도 직설적으로, 또는 과장해 표현하지 않는다. 덤덤하게 관객의 공감을 살 뿐이다. 이 점에서 멜 깁슨이라는 배우의 진가가 발휘된다.
딸 앞에서 기쁨을 감추지 못하고 어색하게 웃어보이던 아버지, 딸을 잃은 슬픔과 증오를 삭혀가며 끝까지 이성과 의지를 잃지 않는 한 남자의 연기를 그는 너무도 덤덤하게 표현해내고 있다. 지금까지 멜 깁슨의 연기에는 대부분 광기와 폭력이 가장 주된 조미료였다. 그리고 이미 무표정과 눈 빛 연기만으로도 그는 내제된 광기를 관객에게 전달하기에 이른 것 같다. 이 처럼 표현하기 힘든 깊이있는 연기를 너무도 자연스럽게 잘 소화해낸 멜 깁슨에게 박수를 보내고 싶다. 개인이 상대하기에는 너무도 힘겨운 거대한 음모에 맞선 싸움에 끝까지 의지를 잃지않고 스스로를 불사르는 너무도 어려운 연기에 관객이 충분히 긍정할만한 개연성을 부여한데는 그의 완성도 높은 연기가 크게 한 몫을 한 것이다.
엣지 오브 다크니스 절제된 표현, 깊이있는 복선, 섬세한 연출, 배우의 완성된 연기가 잘 어울어진 가치 높은 영화였다. 멜 깁슨의 오랜 연기 생활에 한 획을 그을만한 작품이었다고 생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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