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0년대 이후 유년기를 보냈다면 거대 로봇에 대한 동경과 로망을 가져보지 않은 남자 아이가 있을까? 나 역시 어려서 부터 초대형 로봇에 대해 아련한 감성을 가지고 자라왔다. 지금은 어린 시절이 잘 기억이 나지 않을 정도로 인생을 살아왔지만 이 어렴풋한 동경은 아직도 뇌 속 깊이, 가슴 속 깊이 남아 나에게 영향을 주고 있는 것 같다. 퍼시픽림(Pacific RIM)은 이러한 남자아이의 동경심을 강하게 자극하는 영화다. 퍼시픽림은 인간이 조종하는 초고층 빌딩 높이의 거대 로봇이 외계로부터 온 정체 불명 거대 괴수들과 맞서 지구를 지켜낸다는 큰 스토리 라인을 골자로 하고 있다. 그 와중에 작은 인간들 간의 갈등이나 아픈 기억들의 충돌도 생각보다 섬세하게 표현되고 있지만 남자아이의 기억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에게 초 거대 로봇과 괴수의 싸움을 보여주면서 다른 곳에 눈을 돌리라는 것은 어쩌면 무리한 요구가 될지도 모르겠다. 더불어 거대로봇과 괴수의 싸움터로 태평양 연안을 고른 것은 무척 훌륭했다.
영화 촬영기술의 발달과 과학의 첨단화에 더불에 영상으로 표현되는 거대 로봇 역시 그 모습에서 많은 변화를 겪었다. 이족보행을 하며 손가락 한 마디 한 마디 움직이는 섬세하고 복잡한 움직임이 가능한 거대로봇, 그 뿐 아니라 각종 첨단 무기와 장비들까지 갖추고 있음에도 주인공 혼자서 버튼 몇 개와 레버 몇 가닥 두 발로 페달을 밟으며 완벽하게 이 복잡한 로봇을 조종해 내며 모든 물리 법칙을 무시하는 것이 과거 영상 매체 속의 거대 로봇이었다면 퍼시픽림 속의 거대 로봇은 두 명 이상의 조종사의 신경을 동시에 로봇에 연결해 동작을 일체화 시켜 조종된다. 거대한 만큼 막대하게 발생하는 물리 현상 역시 섬세하게 표현하려고 노력한 모습이 보인다. 엄청나게 발달한 CG가 이 모든 것을 표현 가능하게 해 주었다.
거대 로봇과 괴수에 비하면 보잘 것 없는 작은 인간이라도 개성 만점의 배우들의 등장으로 꽤 인상깊은 연기도 감상할 수 있다. 모터싸이클 갱을 다룬 드라마 선즈오브아나키(Sons of Anarchy)의 인상깊은 두 주역 배우, 론 폴먼과 찰리 하냄, 브래드 피트 주연의 명작 영화 바벨에 등장해 강한 개성을 보여준 일본인 여자 배우 키쿠치 린코!
개인적인 아쉬운 점, 두가지가 있다면 첫째, 거대 로봇의 디자인에 있다. 가늘고 긴 하체에서 상대적으로 거대 로봇의 중압감과 무게감이 덜 느껴지고 약간 부실해 보이기까지 한다. 박력이 떨어지는 디자인이었다고 생각된다. 둘째로 액션 영화로서의 액션 장면에서 큰 감흥을 느끼지 못했다. 최근 극의에 다다른 헐리웃 블록버스터 액션 영화들에 비해 액션의 완성도가 상대적으로 좋지 못하다. 최근 맨 오브 스틸의 완성도 극강의 액션 장면에 비교한다면 실망감이 조금 생길 수도 있겠다.
이 두가지 단점에도 불구하고 무척 재미있게 즐긴 영화였다. 거대 로봇과 외계 괴수가 끝없이 광활한 태평양 연안에서 결투를 벌이고 있는데 더이상 무슨 말이 필요하단 말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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